영국의 헨리 8세는 16세기 수도원의 조직이 견고하고 위로부터 철저하게 통제돼 오히려 쉽게 해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실제로 그가 수도원장을 참수하자 사슬처럼 단단히 얽혀 있던 조직 전체가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이 수도원의 모태인 로마교회는 수직적인 위계와 철저한 통제를 고수하면서도 건재했다. 교회 내부에 많은 '핫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클레어먼트대학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교수인 진 립먼-블루먼과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해럴드 레빗이 쓴 '핫그룹'(이종인 옮김,바다출판사,1만2천원)은 현대 기업에서 이같은 핫그룹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핫그룹'은 열정적으로 일하는 소규모의 자생 조직을 뜻한다. 이들은 핫그룹을 야생 오리에 비유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온 야생 오리들은 주민들이 먹을 것을 주자 마음이 느긋해져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안주한다. 하지만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은 일단의 오리들은 때가 되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여기서 저자들은 조직내에서 이런 야생 오리들,열정에 넘치는 과제지향적인 그룹을 찾아서 키우라고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이 핫그룹일까. 저자들은 핫그룹이 전혀 새로운 조직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인 순간에 등장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공식에 맞는 그림만 인정하는 아카데미 살롱전에 대항해 자신들만의 그림을 전시하려고 뭉쳤던 인상파 화가들,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밤낮없이 매진한 연구자들,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고조됐을 때 한시적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을 맡았던 '엑스콤' 등이 그런 사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들어낸 '노사모'도 핫그룹이다. 핫그룹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과제에 대한 헌신과 도전정신,강한 사명감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율적으로 일하고 어린 아이처럼 편견 없이 생각한다. 종종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탈적 작업에서 혁신을 일으킨다. 핫그룹은 또한 맡은 일을 완수하면 관료적 조직에 편입되지 않고 해체하는 한시적 그룹이다. 따라서 이런 핫그룹을 이끌려면 '핫 리더십'이 필요하다. 창업주를 닮은 '기업가적 개인'이 핫그룹의 리더로 적합한데 이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당장 일에 직접 뛰어드는 카리스마형 리더,프로젝트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선에서 지원하는 후견인형 리더,핫그룹이 도중에 흥미를 잃고 그만두지 않도록 다리를 놓는 불꽃소지형 등이다. 어떤 경우든 신뢰받는 핫그룹 리더가 되려면 사람 중심으로 사고하고 그룹 중심으로 행동하라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또한 기업이 핫그룹을 키우려면 열정을 지닌 지휘자를 찾아내 지원하고 '야생 오리'들을 합리적인 경쟁,'조직된 무정부 상태'로 이끌라고 제안한다. 또한 전체 조직을 무기력한 상태에서 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핫그룹이 하도록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렇다고 핫그룹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핫그룹은 여타 조직원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적에게 둘러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면 얼어붙은 조직을 해빙시켜 보람있고 도전적인 일을 찾아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