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였던 우성 김종영(1915~82년). 타계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조각가들에게 '도전의 대상'이면서 '극복의 대상'이다. 동양과 서양,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가장 단순한 형태로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한 2백50여점의 조각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는 특별전이 지난 15일 개관한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자각상(自刻像)' 등 1950∼70년대 조각작품 26점과 드로잉 서예 16점이 출품됐다. 미술관은 개관에 맞춰 작품집 '김종영 인생ㆍ예술ㆍ사랑'을 발간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은 2백여점. 드로잉만도 2천여점에 달한다. 그의 조각품은 외부 소장품이 40여점에 불과할 정도로 유족측이 작품 관리를 철저히 해왔다. 김종영은 김경승 윤효중 김정숙 등과 더불어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운 그는 해방 직전 귀국해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창작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에게는 '불각(不刻)의 미'를 추구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재료가 나무이든 돌이든 간에 인공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깎은 '무기교의 기교'가 담겨 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창조적 통찰을 바탕으로 순수 조형의 본질을 기하학적이고 단순명쾌한 형태로 구현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창조라는 낱말은 나에게 없다.예술가가 창작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 김종영은 평소 '자신의 예술적 목표가 통찰'이라고 강조했다. 개성이나 독창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연이나 사물의 질서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 주력했다. 자연에 깃들여 있는 정신성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종영은 동양에선 완당 김정희를,서양에선 세잔을 가장 존경했다. 두 대가의 정신을 교훈삼아 그는 동양의 선비적인 사상과 서양의 모던한 양식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미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탐구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1953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개최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기도 했다. (02)3217-6484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