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먼저 그리기 시작한다. 목수들의 순서는 정반대다. 집의 기초를 완성한 뒤 기둥, 지붕 순서로 그린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중시하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독일의 중견 화가 요나스 부르게르트(55)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사람을 그릴 때 속옷을 입은 그림을 완성한 뒤 그 위에 겉옷을 덧그린다. 겉옷을 그리는 과정에서 먼저 그린 몸과 속옷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 사람이 옷을 입는 순서로 그림을 그려야 등장인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고 캐릭터성이 살아난다”며 이 같은 작업 방식을 고집한다.헛수고는 아니다. 초현실주의 화풍을 섞은 상상 속 세상을 그리는데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듯 묘한 현실감을 준다.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환상적이면서 어두운 느낌의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중세 네덜란드 출신 거장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연상하게 한다는 평가가 많다. 청담동 탕컨템포러리아트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신와일드’ 전시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가로 7.2m, 세로 3.6m에 달하는 대작 ‘Viechlast’가 백미다.전시는 오는 5월 25일까지.성수영 기자
“제가 생각하는 ‘근본 있는 음악가’는 둘로 나뉩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두려움 없이 표현하면서도 때론 유머를 던질 줄 아는 음악가와 귀로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새도 없이 첫 음부터 심장을 강타하는 음악가입니다. 특히 심장을 강타하는 연주는 시대가 내린 천재, 축복받은 음악가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진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19일 화상으로 만난 피아니스트 임윤찬(20·사진)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6시간 정도 연습하지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임윤찬이 세계적 음반사인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작업한 첫 번째 앨범인 ‘쇼팽: 에튀드’를 발매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이번 앨범에는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10’ ‘에튀드 작품번호 25’가 담겼다. 한 작품당 12개, 총 24개 에튀드로 구성됐다.미국에 체류 중인 임윤찬은 “쇼팽 에튀드는 어렸을 때부터 귀로 듣고, 손으로 연습해온 작품”이라며 “10년 동안 속에 있던 용암을 인제야 밖으로 토해내는 느낌”이라고 했다. 명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가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밴 클라이번의 연주를 보고 “진정 위대한 예술은 일곱 겹의 갑옷을 입은 뜨거운 용암과 같다”고 한 말을 인용한 표현이다. 이어 임윤찬은 “꼭 이 나이에 이 산(쇼팽 에튀드)을 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임윤찬은 악보를 보면 자연스레 심상이 떠오르는 편일까, 음 하나하나를 꼼꼼히 해석하고 분석
“법원은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법에 근거한’ 판결을 해야 합니다.” 김영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67·사진)는 1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원이 지향해야 할 판결의 방향성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1981년부터 판사로 일한 김 교수는 2004년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돼 6년간 재직했다.2011년 공직에서 물러난 김 교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는 저서를 꾸준히 내왔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에서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한 재판부다. 사회적 파급력이 커 대법관들 간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법적 사안이 나왔을 때 주로 소집된다.김 교수는 지난달 출간한 <판결 너머의 자유>를 통해 논쟁이 되는 사회적 사안에서 상반된 의견을 가진 대법관들이 어떤 합의를 거쳐 판결하는지 분석했다. 2023년 전원합의체에 상정된 ‘장남 제사주재자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네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다. 그는 첫 번째 가정에서 성인인 두 딸을, 두 번째 가정에서는 청소년 딸 한 명과 미성년 아들 한 명을 뒀다.아버지 사망 당시 1·2심에서는 2008년 전원합의체가 다룬 유사 사건에서 ‘장남이 제사주재자 권리를 가진다’고 결론 난 것을 근거로 아버지 유해에 대한 권리가 두 번째 가정에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피상속인의 유체·유해를 상속인 중 한 명이 제사주재자로서 승계해야 한다’는 민법 제1008조 3항에 대해 “제사주재자는 상속인들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 통념상 망인의 장남이 된다”고 해석했다.하지만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