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가 미술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부터였다고 한다. 화가들은 지난 2천년동안 그림을 통해 여체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는 인간의 이념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영원한 테마"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체풍경"전(내년 2월 23일까지)과 12일 서울 안국동 갤러리사비나에서 개막하는 "누드"전(내년 2월 27일까지)은 인체를 주제로 한 전시다. "누드"전이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생명력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접근 방식인 반면 "신체풍경"전은 몸을 통해 현대인간의 비인간화,정체성 등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로댕갤러리 참여작가는 공성훈 김명숙 김아타 김일용 박성태 박영숙 윤애영 정복수 정현 등 9명. 갤러리사비나의 '누드'전에는 고명근 민성래 신경철 홍성도 민병헌 이숙자 김보중 이강하 한애규 등 20여명이 작품을 출품한다. 현대 작가들은 인체를 현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박영숙의 사진작인 '자궁의 노래'나 '신체와 성'에 등장하는 인물은 임신한 여인이나 40대 여성이다. 여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전통적인 미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생리 임신 일과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여성에 대한 편견을 비판한다. 김일용의 조각인 '존재 없는 존재' 시리즈는 아예 찢겨진 인체 부위를 보여준다. 얼굴 팔 다리의 일부가 없고 몸통을 해체해 재조립과 성형이 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인간 신체의 나약성을 강조한다. 김아타는 알몸의 남녀를 아크릴 속에 밀착해서 집어넣은 뒤 사진작업했다. 아크릴 속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웅크리고 있는 두 사람은 더이상 인간의 존엄을 지니지 않은 채 하나의 오브제가 돼 있다. 김보중의 '숲-누드',이강하의 '비무장지대-통일의 예감',조광현의 '정글의 소리'는 누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강조한 작품들이다. 민병헌의 '인체',이숙자의 '이브-칸나',정우범의 '가을여인'은 에로티시즘을 통해 미를 표현한 전통적인 누드화로 볼 수 있다. 로댕갤러리(02-3706-7496) 갤러리사비나(02-736-4371)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