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73)의 소설 「운명」(다른우리刊)이 나왔다. 케르테스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제는 '운명없음'을 뜻하는 헝가리어 '소르슈탈란사그(Sorstalansag)'. 케르테스가 1975년 발표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아우슈비츠 체험을 담았다.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됐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억을 유대계 소년 죄르지의눈을 통해 펼쳐보인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강제수용소는 굶주림과 강제노동, 극한의 노동과 학살이 있던 곳만은 아니다. 그는 강제수용소 생활에 잘 적응하려 애쓸 뿐만 아니라 때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년은 가축운반용 화물열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가는 길을 보이스카우트의 모험처럼 느끼는가 하면, 쓸만한 일꾼으로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졌을 때 "곧 나도부헨발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 부다페스트로돌아온 뒤 "아름다운 강제수용소에 좀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이전 작품들과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비극을 강조하거나 도덕적 견해를 밝히길 거부하고 자신에게 부과된현실에 잘 적응하려는 순진한 소년의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맞닥뜨린 삶의 부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이 소설은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남자주인공이 어린 아들에게 우스꽝스런 연기를 해보이던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오르게 한다. 케르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리스트」가 '아우슈비츠의 거짓'을 드러낸 유치한 작품인데 반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신뢰할만한 작품"이라고 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우리 출판사는 이 작품에 이어 「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등 케르테스의 다른 작품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박종대ㆍ모명숙 옮김. 292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