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나이로 요절한 수필가이자 번역가 전혜린(1934-65)의 일생을 조명한 평전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전혜린」(꿈과 희망刊)이 나왔다. 경기여중고를 거쳐 서울법대를 중퇴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4년간 유학했던 전혜린은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비범한 정신력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196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시인 정공채(68)씨가 쓴 이 평전은 전혜린이 남긴 일기와 편지글, 수필과 시 등을 통해 그녀의 `불꽃같은 삶'이 어떻게 불을 지폈고 꺼져갔는지 보여준다. 평전은 문학소녀였던 전혜린이 서울법대에 진학했다가 3학년을 중퇴하고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는 데서 출발한다. 뮌헨의 유서깊은 예술인 동네였던 슈바빙 지구에 외롭게 둥지를 틀었던 그녀가 그곳의 낭만적 분위기와 학구열에 휩싸여 지내는 모습은 문학소녀의 여린 감수성이 예리한 지성과 우수어린 문학적 색채로 옷을 입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후 친구와 동생 채린 등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 등은 실존에 몸부림치는 지성인의 처절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서울법대, 이화여대 강사와 성균관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쓴 글에도 실존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그녀의 운명이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뻗쳐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전의 저자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는 그녀의 죽음을 밝히려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가 죽기 이틀 전 서울 명동의 술집 `은성'에서 낭송하고 불태워버린 시는 그녀의 죽음이 자살에 가깝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그때 당신이 돌아온다 해도/나는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남편과의 별거, 뜻대로 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절망 등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줌의 재로 변할 뻔 했던 이 시는 당시 술자리에 동석했던 그녀의 절친했던 술벗 여기자 조영숙씨가 베껴놓아 세상에 전해지게 됐다.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고 썼던 시의 내용처럼 전혜린은 이틀 후 일요일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 이 책은 1982년 전혜린의 평전을 처음 썼던 번역문학가 이덕희씨의 증언도 곁들여 놓았다. 전혜린은 죽기 전 이씨에게 수면제 세코날을 마흔 알이나 구했다고 은근히 알렸고, 죽음을 앞두고 `은성'에서 지인들과 `마지막 만찬'을 치렀던 것이다. 지난 1년반 동안 전혜린의 평전을 집필하는 데 매달렸던 정씨는 "그녀의 온갖 감정과 지성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빛나고 있는 가치 큰 삶이요, 예술이었기에 일원화된 체계로 그녀의 평전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며 "슬프도록 아름답고 안타까운 그녀의 평전을 쓰면서 몇 번이고 속으로 울어야 했다"고 책의 후기에서 밝혔다. 360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