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현대적 의미의 상업화랑이 등장한 것은 현대화랑과 명동화랑이 잇따라 문을 연 1970년. 상업화랑 역사가 30여년이 지나면서 2세들이 '가업(家業)'을 잇는 화랑이 늘고 있다. 미술시장 밑바닥에서 경험을 쌓아 '자수성가'한 1세대 화상과 달리 2세들은 국내외에서 미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게 특징. 여기에 화랑 경영 노하우를 접목시켜 국제적 화랑으로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2세 화상들의 활약이 주목된다. ○…가장 먼저 '대물림'이 이어진 곳은 인사동에 있는 동산방화랑. 박우홍 대표(51)는 10년 전 아버지 박주환씨로부터 화랑 경영수업을 쌓은 뒤 2000년 가업을 승계했다. 동산방화랑은 1965년 미술품 거래와 표구제작 업체로 출발했다 1974년 화랑으로 개업했다. 박주환씨는 고서화 감정에 안목이 높은 원로 화상. 1977년부터 미술계에 발을 내딘 박 대표는 근·현대 한국화를 중심으로 기획전을 해왔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예화랑은 2세들이 현업에 뛰어들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화랑들이다. 1970년 4월 오픈해 국내 근·현대 미술시장의 산파역을 해 온 갤러리현대는 박명자 대표의 차남인 도형태 부장(34)이 국제교류전 해외아트페어 등 국제업무를 도맡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인사동에 아트숍과 갤러리를 겸한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두 아트 갤러리'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미술경영에 나섰다. 뉴욕대와 프랫대학원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전공했다. 도씨는 "내년부터 최소한 1명 이상의 젊은 작가들을 해외아트페어에 참여시켜 국내 젊은 작가들이 해외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기획전에 강한 국제갤러리는 이현숙 대표의 딸인 김태희씨(31·미국명 티나 김)가 이 화랑의 국제전 대부분을 기획한다. 11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김씨는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뉴욕대학원에서 미술경영으로 전환했다. 지난 10월 맨해튼 57번가에 자신의 이름을 딴 '티나 김 갤러리'를 열어 본격적인 딜러로 뛰기 시작했다. 국제갤러리의 외국작가 기획전을 진행하면서 당분간 뉴욕에서 딜러 업무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1978년 문을 열어 내년 창립 25주년을 맞는 예화랑은 이숙영 대표의 장녀 김방은 실장(32)이 올해부터 화랑 업무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전시기획 홍보업무는 물론이고 컬렉터와의 거래에도 관여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였지만 런던 에섹스대학에서 3년간 미술사와 전시기획을 배운 후 미술경영으로 방향을 바꿨다. 김씨는 "젊은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한편 시즌별로 이벤트 기획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화랑 경영은 작가 컬렉터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를 배운 2세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고 설명한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