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물감을 사용해 도시의 음울한 분위기를 두터운 마티에르로 보여온 서양화가 오치균(46). 그가 탄광촌의 대명사였던 사북지역의 풍경을 담은 신작을 들고 4년만에 화단에 돌아왔다.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는 카지노가 들어서기 전 을씨년스런 사북의 풍경을 가라앉은 색조로 묘사한 40여점이 선보인다. 오씨는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화면으로 지난 91년 국내에서 첫 전시를 연 이후 10년동안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5회에 걸친 개인전을 통해 5백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팔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IMF사태 직후 미술계가 '고사(枯死) 상태'였던 지난 98년 전시에서도 80여점이 팔려 그의 인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그는 컬렉터뿐 아니라 작가들로부터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와 뉴욕 브루클린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오씨는 지난 91∼92년 세검정 무악재 등 서울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도시의 어두운 구석을 소재로 밝지 않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던져주는 색감과 부조에 가까운 질감이 돋보였기 때문. 90년대 중반과 후반 뉴욕과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머물며 그린 뉴욕 산타페풍경 그림은 '매진'에 가까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그림은 전통과 현대가 어설프게 공존하는 사북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가슴 휑하니 바람만 오르내리는 돌계단,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 등 인적이 끊긴 탄광촌의 모습은 무척 을씨년스럽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바르는 '핑거 페인팅(finger painting)' 기법은 여전하지만 과거 작품에 비해 화면이 밝아지고 구상에서 반추상으로 방향을 약간 바꾼 게 신작의 특징이다. 작가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쪽방 같은 집들의 푸른 페인트,요란한 커튼에서 희망이 담겨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미술 월간지 '아트 인 컬처'의 김복기 주간은 "영상·설치미술이 판을 치는 요즘에 그의 그림은 뭉클한 감동을 주는 평면회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다른 작가의 개인전에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작업에만 전념하는 외곬 성격이다. "한눈 팔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게 저를 아끼는 애호가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동안 그의 작품 가격도 많이 올랐다. 90년대 초 1백호 크기가 4백만원 수준이었지만 이번 신작은 10호 소품이 5백만원이다. (02)736-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