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우후(鷄口牛後) 라는 말이 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음식재료의 차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여름내 파리 떼를 쫓느라 분주했던 소꼬리는 영양분의 보고다. 움직임이 많다보니 가장 맛있다는 앞다리와 그 맛을 견줄만하다. 근육과 관절,피부 등에 탄력을 주는 특수 고단백식품인 콜라겐을 잔뜩 함유하고 있는 소꼬리는 여성들의 산후 보양식과 당뇨,빈혈이 있는 환자들의 특별식으로 애용되어 왔다. 기름기가 많아 손질하는데 애를 먹기 일쑤인 소꼬리지만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해 이제는 비싼 요리로 취급받고 있다. 소꼬리 하나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전문점 세 곳을 소개한다. 구월산(영등포구청 맞은편 먹자골목,02-2634-5180)=33년째 변하지 않는 손맛을 보여 주는 꼬리찜의 명가. 꼬리곰탕을 주메뉴로 하던 20여 년 전 단골들의 술안주용으로 선보인 꼬리찜이 인기를 끌어 지금에 이르렀다. 사골을 삶은 육수에 소꼬리와 양파,표고,마늘 등을 넣어 함께 끓인 이 집의 꼬리찜은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낸다. 한 입 무는 순간 쏙 빠져 나오는 살점들은 적당히 익어 보드랍게 입안을 맴돈다. 청양고추를 삭혀서 매운맛을 빼고 간장을 넣어 달인 양념장의 칼칼함이 독특하다. 부드러운 꼬리찜의 맛과 썩 잘 맞는 궁합이다. 곁들여 내오는 양파 무침과 상추 겉절이의 시원함이 느끼해지기 쉬운 뒷맛을 말끔히 해소한다.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인건비를 줄인 덕에 10년째 같은 값을 유지하고 있다. 고향 땅이 그리워 구월산 이라는 상호를 지었다는 주인 내외는 손님들을 친자식처럼 따뜻하게 맞이한다. 본가 설렁탕(석촌호수 뉴스타 호텔 옆,02-414-5945)=20년 넘게 설렁탕을 다루던 주방장이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개발했다는 꼬리찜이 인상적이다. 인삼,녹각,대추,피망,양파,대파,당근,표고,마늘,생강에 팽이버섯까지 다양한 재료로 풍성하게 담아내는 꼬리찜은 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약한 불에서 오래도록 끓인 꼬리는 육질이 쫄깃하고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한 육수는 맑고 시원하다. 일반적인 꼬리찜에 비해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신선한 야채 때문이다. 야채에서 우러난 단맛이 꼬리의 느끼함을 감춰주고 녹각과 인삼의 묵직한 향이 자칫 달아서 질릴 수 있는 야채의 맛을 보완해 준다. 잘 손질한 꼬리와 신선한 야채,좋은 약재가 만들어 낸 완벽한 맛의 삼박자다. 다 먹고 나면 육수에 밥을 볶아주는 서비스도 곁들여 진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시각적 만족을 위해 돌판을 사용한다는 주방장의 말에서 치열한 손님맞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영춘옥(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옆 골목,02-765-4237)=종로 한 복판에서 60년 동안 꼬리를 끓여 온 전통의 맛 집. 30~40대 샐러리맨들로 자그마한 가게는 언제나 만원이다. 이 집의 꼬리찜은 다른 집처럼 작게 썰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굵직한 덩어리로 내놓는다. 잘게 썰면 뼈에서 살이 쏙쏙 빠지는 재미가 있지만 큼직하게 썰면 뼈를 감싸고 있는 묵직한 살덩이를 씹는 재미가 있다. 양손으로 잡고 한 입 물면 흐드러질 만큼 부드럽다. 살을 다 발라먹으면 뼈와 뼈 사이의 연골이 쫄깃한 씹는 재미를 준다. 꼬리찜은 기름진 음식임에 틀림없다. 몇 입 돌려먹다 보면 어느새 입술이 번들거리며 끈적거린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이 집의 꼬리찜은 입안이 전혀 끈적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양념을 넣지 않고 소꼬리만으로 찜을 하는데도 노린내가 나지 않는 기술도 이 집의 자랑이다. 대파를 길게 잘라 넣어 푹 끓인 꼬리곰탕 국물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 김유진.맛 칼럼니스트 MBC PDshowboo@dreamw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