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한운성씨(56·서울대 교수)가 5년째 집착하고 있는 대상은 과일이다. 감 석류 수박 호박 토마토 등의 과일과 열매채소를 집요하게 화면에 담고 있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갖고 있는 12번째 개인전도 그 연장선상인 '과일채집' 시리즈다. 한씨는 과일을 곤충이나 식물 채집하듯 캔버스에 옮겨 놓았지만 일반적인 정물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의 그림은 옆모습에 주목하는 정물화와 달리 과일의 꼭지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과일 이름도 '채집' 유형에 따라 학명을 기재했다. 과일의 꼭지는 '생명의 상징'이다. 지난 99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과일채집' 시리즈가 과일의 그림자를 통해 기울어가는 달의 모습을 연상시켰다면 이번 신작들은 더욱 꼭지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꼭지를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집요하게 과일 채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생명체마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현대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유전자 조작과 생명복제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의 위기의식을 과일 채집이라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25일까지.(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