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경험한 여자는 평생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존 휴스턴 감독 '저지 로이 빈의 생애와 시대'란 영화의 평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에세이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한길사)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는 내로라하는 영화가 총망라되어 있다. 책을 평하는 일이나 영화를 평하는 일 모두 인생의 깊이와 지식의 깊이가 실린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멋진 지혜와 재미를 듬뿍 안겨다 줄 것이다. '마타하리' '안나 카레니나'에서 열연했던 그레타 가르보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가버린 대중들의 우상이었다. 시오노는 그녀를 두고 이런 평을 내린다. "실상이란 그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이며, 허상이란 그 사람의 재능과 노력과 운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작품이 허상에 해당할 것이다. 나라면 꿈속의 스타를 직접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몇 번 보았을 것이다." 남녀간의 우정을 그린 1989년 작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대해서는 이런 평이 나온다.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은 남자란 여자에게 몹시 불안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 억지를 부려도 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관계의 거리를 재는 잣대를, 여자는 침대에서 손에 넣는다. 그래야 남자는 비로소 '불안한 존재'를 벗어날 것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두 여배우 패트리셔 닐과 캐서린 헵번의 삶을 비교하면서 인간에게 불륜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불륜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여자는 남자를 독점할 생각을 버린 여자뿐일 것이다. 남자를 자기만의 소유로 삼으려는 순간,파국을 맞이하는 것이 불륜의 숙명이다." '책과 함께 영화로 나를 길러주신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께'라는 헌사로 시작되는 이 책은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불가능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뜻이 아닐까'로 끝을 맺는다. 시오노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