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째 미술품을 구입해 온 L씨는 미술계에서 꽤 알려진 여성 컬렉터다. 대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작품을 구입한 그는 박수근 이중섭 등 알짜배기 근·현대작품과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L씨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웃돈을 주고라도 반드시 구입했다고 한다. "박수근 그림이 호당 1백50만원 하던 81년쯤으로 기억합니다. 3호짜리 작품이 너무 좋아 거래가의 두 배인 1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화랑 주인이 안 팔겠다고 버티더군요. 그래서 1천만원을 던져놓고 전시 끝나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나중에 제 수중에 들어왔어요." L씨의 컬렉션은 투자 가치로 보면 '대박'에 가까운 셈이다. 그는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데는 개인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다"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선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씨가 '큰손' 컬렉터라면 50대 가정주부인 H씨는 미술애호가에 가까운 전형적인 컬렉터다. 그는 지난 10여년동안 비싼 그림은 못 사고 2천만원 미만의 중견작가 작품 40여점을 모았다. 미술품 구매로 큰돈은 못 벌었지만 소장품을 지금 내다 팔아도 어느 정도 수익은 보장된다고 한다. H씨는 주말이면 부부 동반으로 화랑과 미술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하는 게 삶의 즐거움이다. "미술을 전혀 모르던 친구 10여명에게 미술품 구입을 권유했어요. 그랬더니 요즘 와선 다들 인생관이 달라졌다며 즐거워하더군요." H씨는 "미술품 구입을 투자로 보면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취미로 시작하면 큰돈 안 들이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백자와 질그릇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유명한 소장가였다. 그는 1910년대부터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조선 도자기를 엄청나게 사 모았다. 돈 많은 다른 일본 소장가들이 "야나기는 돈이 없어 민예품을 산다"고 비꼬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부자 소장가는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명 작품에 인이 박이고 안목마저 세론에 속박돼 다른 것을 살필 여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컬렉션에선 돈의 많고 적음,투자가치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컬렉션은 미술품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