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깎아지르는 듯 높다란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고산 마을. 스위스를 찾는 이들은 현대 문명의 빠르고 편안한 교통수단을 거부한 채 걸어서 혹은 자전거에 올라 이 알프스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기를 마다 않는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융프라우 요흐나 체르마트 등을 비롯해 루체른 호수 인근, 오버알프, 그리고 몰레송 등의 지역들이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트래킹을 즐길만한 곳이다. 조금은 생소한 곳이지만, 스위스 동부 지역의 스쿠올(Scuol)과 브리크(Brig)는 아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웅장한 자연을 한꺼번에 만나는 새로운 트래킹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알프스의 풍경과 그 속에 숨겨져 흘러내리고 있는 웅장한 빙하의 장관을 맛기 위해 인터라켄에서 출발해 융프라우 요흐를 체험하는 빙하 트래킹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 일부를 감상할 뿐. 최근 스위스 최고의 빙하로 불리는 알레치의 빙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다양한 빙하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었고, 그 중 두드러진 것으로 브리크에서 출발해 알레치 숲을 지나 빙하의 전경을 체험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취리히에서 기차로 약 4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브리크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약 20여 분을 올라 간 뒤 에기스호른(Eggishorn)과 알레치호른(Aletchhorn)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빙하 트래킹을 시작하게 된다. 산중턱과는 달리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흰 눈이 덮인 뾰죽한 정상, 그리고 깎아지를 듯 내려오는 알프스를 바로 앞에서 맛보는 것이 이 곳 트래킹의 묘미.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인 탓에 나무가 자랄 수 없어 세찬 풍화에 깎여진 암석들과 낮은 키의 초목들만이 산등성이를 드문드문 채우고 있어 시야를 더욱 틔워준다. 또, 구름 때문에 간혹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지만 에기스호른(해발 4,195m)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 아래를 강물처럼 흐르듯 펼쳐진 알레치 빙하의 장관을 경험하게 된다. 두터운 얼음층이 거대한 계곡을 이루며 지나는 알레치 빙하는, 최대길이 26.8km, 평균너비 1,800m의 언뜻 실감나지 않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 규모에 걸맞게 스위스의 주요 수력발전과 용수가 이 알레치 빙하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이다. 빙하지대를 지나 스위스의 상징이자 대표적 고산 야생화인 에델바이스가 곳곳에 핀 길을 따라 알레치 숲과 맑고 투명한 호수를 둘러보는 트래킹 코스의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중간에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마련하고 있는 샬레 풍의 산장 레스토랑이 있어 다리를 쉬어 갈 수 있다. 다양한 트래킹의 메카, 스쿠올스위스 동부, 오스트리아에서 20여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 스쿠올(Scuol)은, 알레치 빙하의 웅장함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다양한 트래킹 프로그램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히 푸른 초원의 풍경이 인상적인 여름이면, 이웃 마을 프탄으로 이어지는 트래킹이 인기. 엔가딘 계곡을 끼고 자리한 스쿠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를 15분. 어느 덧 해발 2,146m의 모타 나른스가 눈앞에 다가 온 정상 부근에 이르면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겨울철 스키로 유명한 곳인 만큼 키가 훌쩍 큰 나무를 찾아보기 드물어 산아래 마을의 풍경이 한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데, 이 풍경이 발치 아래에 늘 함께 하는 산중턱을 따라 트래킹이 이어진다. 특히 바이크 트래킹의 재미가 특별하다. 킥보드의 구조를 닮았지만 자전거와 비슷한 크기의 바퀴 두 개를 단 채 두 발로 서서 즐기는 독특한 바이크 트래킹은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있다. 이곳에선 '스쿠터'라고 불리는데, 이를 이용해 산 정상에서 마을입구까지 쏜살같은 속도로 내려가는 동안의 스릴과 쾌감은 어떤 산악스포츠에 비할 바가 못된다. 물론 가속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사전에 요령을 숙지하고 자신의 수준에 따라 조절하기만 한다면 적절한 속도감이 주는 짜릿함을 온 몸으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을로 가까워질수록 소나무가 빼곡이 들어찬 숲과 맑은 시내를 지나는 변화무쌍한 알프스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저 멀리 마을의 아늑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통나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의 향기에 취해보는 여유도 스쿠올 트래킹만의 매력. 이밖에도 패러 글라이딩과 마운틴 바이킹, 모터 사이클링에 열중하는 사람들, 사이클링 중간에 짬을 내어 초원 위에서의 바비큐 점심을 즐기는 가족들의 여유 있는 모습과도 심심찮게 마주하게 된다. 스위스에서 지켜야 할 유일한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과 가장 가까이, 그리고 온전히 동화될 것'이 아닐까. 스위스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트래킹 프로그램들은 이 스위스 법칙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현지취재=남기환(객원기자) 취재협조=스위스정부관광청(02-739-0034, www.myswitzerla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