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피서여행의 주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면 '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자연이 내는 소리, 자연에 묻힌 사람들의 소리, 그것은 한여름 복더위의 천적이다. 자연을 맛깔스럽게 포장해 주는 추임새로서의 역할을 음미하는 것도 기쁨. 여름소리가 넘쳐나는 고장, 인제를 찾는다. 451번지방도에서 접어든 방태산 적가리골. 주봉인 주억봉(주걱봉.1천4백43m)과 구룡덕봉(1천3백88m) 자락을 대표하는 계곡중 하나다.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등과 함께 '4가리'라고 해 난을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로 꼽혔을 만큼 깊고 외진 곳이다.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여름 가을로 붐비지만, 아직 손을 덜 탄 옛 그대로의 골과 초록이 반갑다. 휴양림 매표소까지 2km 포장길을 따르며 새로 발견한 이 골의 여름주인과 마주한다. 길 오른편 계곡에 가득 넘치는 물소리다. 여울마다 더 큰 소리를 내는게 연도에 늘어선 환영인파의 끊길 듯 이어지는 환호소리를 듣는 것 같다. 매표소를 지나 2백m쯤의 비포장길 위에 2층 통나무집인 산림문화휴양관이 있다. 산림문화휴양관 바로 앞 계곡의 마당바위가 눈길을 빼앗는다. 장맛비로 불어났는데도 투명함을 잃지 않은 큰 물이 은근슬쩍 너럭바위를 훑으며 내리꽂혀 시원스런 소리를 만들어 낸다. 바로 위 텐트 가득한 야영장을 지나면 2개의 정자가 기다린다. 적가리골 계곡미의 백미로 꼽히는 2단폭포가 있는 곳이다. 한번 크게 떨어지고, 다시 넓게 펼쳐져 내려서는 물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 폭포소리는 다른 생각을 할세라 끊임없이 고막을 파고 든다. 활엽수가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한 폭포 밑 공간은 그야말로 '원시의 소리궁전'을 이룬다. 한걸음 아래 계곡 벽으로 흘러내리는 이름없는 폭포 물줄기도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발길을 돌려 방동약수터로 향한다. 적가리골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빠져 올라가는 길에 있는 방동약수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3백여년전 한 심마니가 천 년 묵은 동자삼을 캔 곳에서 솟았다는 약수로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수령 3백년이 넘은 엄나무가 약수의 철분으로 인해 온통 붉어진 약수공을 지키고 있다. 뚜껑을 열고, 찰랑찰랑한 약수를 국자로 떠 한모금 '꿀꺽'하면 뼛속까지 찬기운이 닿는 듯한 느낌. 약수터 길목에서 만난 두 할머니가 빨간 왕산딸기 한줌 내밀며 하는 말. "우린 많이 먹었어. 한번 맛이나 봐. 달콤 쌉싸름한게 더위를 싹 가시게 할거야" 방태산을 뒤로 하고 올라선 인제읍쪽의 31번국도는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더위를 잊을수 있는 곳. '헛둘 헛둘' '와' 하는 래프팅족들의 구령과 함성에 젊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고무보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길 곳곳의 래프팅쉼터에는 기본교육을 받으며 즐거워 하는 40대 직장인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냥 차를 세워 현장접수한 다음 구명조끼를 입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싱그럽다. 인제읍으로 들어서는 합강교 건너 합강정공원 내의 번지점프대. 국내 처음 세워진 호주의 리닝타워형인 이 번지점프대의 높이는 55m. 그냥 지나칠수 없다. 승강기로 최고 높이까지 올라 내려다 보는 맛은 높은 산을 힘겹게 오른 뒤의 그 것과 다름없다. 내린천 물줄기를 따라 굽이도는 계곡이 발아래 펼쳐진다. 발목에 안전줄을 매고, '쓰리 투 원 제로, 번지' 온몸으로 공기를 내리가르는 소리에 오싹 소름이 돋고,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비명소리. 그리고 한번 더 출렁하면 여름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다. 인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