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예술 1번지'로 확고히 자리잡은 예술의전당에서는 올해 한일 월드컵을 맞아 볼 만한 대형 공연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세계 3대 오페라단'의 하나로 꼽히는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모차르트 오페라「피가로의 결혼」과 '오페라계의 황금커플'로 불리는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듀오 콘서트, 스페인 국립무용단 내한공연 등이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입장료만도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까지 받았던 이런 대형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 사이의 중앙광장에 고급 승용차들이 유난히 많이 주차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운치있는 포석이 깔린 넓은 광장 위에 가로수와 아담한 벤치들이 조성돼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공간이 순식간에 대형 주차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주차된 차량들은 노란 외교관 번호판을 달고 있는 승용차를 위시해 대부분 벤츠,BMW, 아우디, 렉서스, 에쿠스, 체어맨 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들. 이른바 VIP들의 차량이다. 언젠가 기자가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타고 공연을 보러 예술의전당에 간 일이 있었는데, 중앙광장에 차를 세우려다 주차안내요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VIP 차량만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현재 예술의전당 주차 수용면적은 1천500대 가량으로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 리사이틀홀, 야외극장 등지에서 동시에 공연이 열릴 경우 주차장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VIP들의 경우 '편리함'과 '예우'를 이유로 들어 공연장 바로 앞의 중앙광장에 차량을 주차해놓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김순규 사장이 취임하면서 내세운 모토가 '고급예술의 대중화'였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고급예술'들의 입장료는 대중들이 접근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높아졌고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VIP 전용 주차장으로 쓰는 모습은 사장의 구호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들은 예술의전당이 VIP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건립되고 운영되는 국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VIP들도 일반인과 똑같이 주차하는 사회가 선진사회 아닐까.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