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신경제의 기수로 활약하던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 장관이 어느 날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저녁에 퇴근하면 아버지를 보겠다며 자기를 꼭 깨워달라고 한 아들의 말에서 신경제가 가져다주는 물질적 번영의 그림자에 도사린 일과 삶의 괴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후 그는 '부유한 노예'라는 책을 통해 신경제 아래에서 각 개인들이 겪고 있는 삶의 변화,즉 생계와 삶을 동시에 꾸려나가는 일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부유한'이라는 단어는 좀 편협하다. 도대체 누가 부유하다는 말인가? 과거에 비해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세계화 신자유주의 신경제를 통해 드러난 것은 나라간,내부 구성원들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의 심화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에단 B 캡스타인이 쓴 '부의 분배'(노혜숙 옮김,생각의 나무,1만3천원)는 라이시와 달리 신경제·세계화 시대의 '분배 문제'를 세계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그의 초점은 '세계화가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비판적 신경제론자인 저자는 지금까지 세계화는 노동자들에게 발목을 붙잡는 덫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소득의 불균형을 더 확대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이나 좀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조차 주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화가 간과해온 사회적 책임과 공정한 부의 분배에 대한 논의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제기한다. 노동자들과 세계화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는 시도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태동한 '시장경제' 속에서 고통받았던 19세기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는 '경제적 패자'들을 배려하지 않았으며 노동계층의 영향력 축소와 사회 붕괴,정치적 불안을 야기했다. 이렇듯 소득의 불균형은 세계경제 성장에 해롭다. 더욱이 앞으로 노동시장의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재원이 인력이라는 점에서 빈부 격차를 줄이는 것만이 결과적으로 개인의 복지뿐 아니라 사회의 양적 질적 성장에 모두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자를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빈곤층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소득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을 시장으로 데려가자'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제안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또한 OECD 국가 중에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필수적인 주거 가족 보육 편부모 등의 복지 급여가 전무한 유일한 나라인 한국에 매우 시사적이다.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