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샤프의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구승회 옮김,한길사,2만원)라는 책의 원제는 '이 길은 어디에 이를까'이다. 이같은 제목은 이 책이 마르크스주의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성찰적이다. 다만 '제2차 산업혁명의 사회적 결과'라는 부제에서 잡아놓은 시야만은 저자가 사적 유물론의 패러다임 안에서 사고하고 있다는 흔적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그 유명한 로마클럽 보고서의 하나로 쓰여진 이 책은 그 '사회적' 결과가 사회주의적이 아니라 오히려 '실존적' 성격의 것임을 논증하는 데 주력한다. 흥미롭게도 저자인 아담 샤프는 집필 당시 현실사회주의의 운영원리로 엄존하던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을 엄격히 비판하는 가운데 마르크스의 통찰을 '현실주의적 미래학'이라는 틀 안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미래학이라고 하지만 아득히 먼 미래가 아니라 집필 시점인 1985년을 기준으로 '20∼30년 앞의 세계'를 다룬다. 그렇다면 2002년 현재 우리는 이 책의 사정권 안에 살고 있다. 우리는 샤프의 예측을 검증하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셈이다. 그것이 이 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되니까. 그가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한 것은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전자공학과 유전자공학의 급속한 발전,그리고 (약간 미약하지만) 에너지 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다. 실제로 도래한 정보사회 안에서 경제적 풍요의 실질적 가능성은 극대화되었고 인간은 그야말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참이다. 그러나 이 노동 해방은 구조적 실업을 뜻한다. 단지 인간의 육체적 힘뿐만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자동기계로 전면 대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방된 인간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야유이다. 여기에서 샤프는 당시 태어나 이제 청년 실업자가 된 우리에게 진정 철학적인 문제를 던진다. 당장 주어질 일자리가 없는 미래의 그대에게 삶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그는 두 가지를 권유한다. 그 중 하나는 국가정치적인 것이다. 제2차 산업혁명의 결실로 증대된 사회적 총소득은 모두 잠재적 실업자인 청년 세대에게 이유를 묻지 말고 분배하라.길거리에서 방황할 이들이 좌절감 속에서 범죄와 마약 복용에 빠져듦으로써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이 분배는 너무나 약소한 예방적 보험이다. 그것은 국가의 몫이다. 국가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체로서 그 효율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각 개인은 정보사회의 가능성을 자신이 인간적으로 성숙할 기회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라 자기의 삶을 즐기면서 남에게 기쁨과 보람을 안겨줄 창조적 활동에 매진하는 '보편적 시민'이 중요하다. 이 때 지속적인 교육은 사회적 의무이고 '공부하는 인간(homo studiosus)'은 새로운 유형의 '보편적 인간(homo universalis)'이다. 그 극점에 '노는 인간(homo ludens)'이 나타난다. 참으로 우연찮게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자발적으로 결집돼 전국민적으로 확산된 붉은 악마식 응원의 성가가 드높다. 정보 사회에서 이보다 더 즐겁게 노는 인간이 있을까? 그리고 샤프의 미래는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