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상원(67)씨는 한국화단에서 매우 특이한 길을 걸어왔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궈낸 입지전적 작가로 꼽힌다.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미술대학은 문턱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학맥이 좌지우지하는 화단 풍토에서 '이단아'의 행로를 밟아온 것이다. 화풍도 지극히 독자적이다. 모더니즘, 모노크롬, 추상화 등의 열풍이 미술계를 강타해도 이씨는 극사실화에 몰입했다. 오불관언이라고 할까, 독불장군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는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제 길을 갔다. 순수미술에 손을 댄 후 1천여점을 제작했지만 그는 단 한 점의 작품도 팔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러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했으나 인맥 등 미술 외적 요인이 수상의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발길을 뚝 끊었다. 예술의 오솔길을 홀로 걷는 그는 늘 외로웠다. 제도권 화단은 이씨의 작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999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국립 러시아 뮤지엄이 생존 동양작가로는 최초로 초대전을 열기까지는 적어도 그런 분위기였다. 오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상에서 열리는 '이상원전'. 이번 개인전에는 '동해인' '향(鄕)' 시리즈 등 유채와 먹을 사용한 최근작 35점이 출품돼 특유의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전시작은 100호에서 500호까지의 대작 중심이어서 드넓은 갤러리상의 전관을 압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과 길이 단골로 등장한다. 인물의 경우 세련되고 팽팽한 얼굴의 미인이 아니라 세파에 깊은 주름이 잡힌 바다와 농촌의 노인이기 십상이다. 길 역시 탄탄대로가 아니라 바퀴자국 깊게 팬 논바닥이나 갯벌의 흔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향' 시리즈는 볼품없는 곳으로 전락해 외면받는 인간 본향의 현실을 의미한다.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입버릇처럼 외쳐지지만 자연은 인간의 삶에서 저만큼 밀려나 있다. 이씨는 논바닥을 할퀸 듯 지나간 바퀴자국과 갯벌에 움푹 팬 인간의 흔적으로 모순과 갈등이 존재하는 고향을 상징한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이씨는 17살 때 무작정 상경해 극장 간판장이로 일했다.1960년대 웬만한 메이저급 극장의 간판은 그의 손을 거쳐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벤허' 등등. 묘사력의 탁월함은 먼저 미군에게서 인정받았다. 그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던 이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아랍국가의 국왕, 닉슨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의 초상화를 그렸고, 우리에게 친숙한 안중근 의사의 영정도 제작했다. 그가 순수회화로 방향을 튼 것은 40대가 돼서였다. 자동차 바퀴자국과 섬세한 마대의 표정을 담은 '시간과 공간' '마대의 얼굴' 시리즈를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해 특선 등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모전에서 눈길은 거둔 이씨는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집스럽게 작품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국립 러시안 뮤지엄에 의해 작품의 예술성이 인정돼 국제적 작가로 부상했다. 이 뮤지엄은 례핀, 샤갈, 칸딘스키 등 미술사적으로 검증된 작고 작가만을 엄선해 전시하는 곳으로 소장품만도 37만점에 달한다. 모두 100점이 출품된 이 초대전은 리얼리즘의 본고장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평론가 알렉산드르 보로프스키는 "동서양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으로 아방가르드로 치닫는 러시아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밖에 러시아 연해주 주립미술관(98년), 중국미술관(98년), 프랑스 살페트리에르 미술관(99년), 중국 상하이 미술관(지난해)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 730-0030.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