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 전 사람에게 지금 우리가 물과 공기처럼 사용하는 인터넷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가령 인터넷의 본부는 어디인가, 인터넷의 소유주는 누구이며 인터넷을 가동시키는 비용과 이익은 어디서 생겨나서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등등. 사실 이런 원시적인 의문은 나 자신이 컴맹 시절 실제로 품었던 것이다. 책상(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떤 장소(사이버 스페이스)로 '들어간다'는 말이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는 조직을 통한 통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각종 조직은 오너와 멤버, 공급자와 수요자, 주체와 객체로 분리된다. 특히나 회사조직에서 이 원리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치로 여겨진다. 산업사회의 등장 이래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을 자연의 질서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고 뒤바뀐다.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했듯이 사람이 만든 조직도 오너이면서 멤버이고 공급자이면서 수요자이고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가 되는 방식은 혹시 없을까. 미국 유타주 산골지방 출신의 디 혹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30대 중반까지 사회생활에서 실패를 거듭한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왜 조직은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사회적이든 상관없이 관리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왜 개인은 자신이 참여하는 조직들과 점점 갈등을 빚고 소외되어 가는가, 왜 사회와 생물권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가? 실직을 거듭하다 은행에 어렵게 취직한 그는 1960년대 후반 새롭게 도입되고 있던 신용카드업의 발흥에 힘입어 자신의 의문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기회를 만나게 된다. 68년 출발해 70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비자인터내셔널의 창업이 그것이다.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건 비자카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본부는 어디 있는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어디서 주식을 살 수 있는지 묻는다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창업 30년만에 지구촌 2만2천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발행되고 2백곳이 넘는 국가와 영토에서 1천5백만 가맹점을 통해 7억5천만명의 사람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구매기관이 이렇다. 가맹점 모두가 오너이면서 동시에 멤버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율적 기업조직. 이 새로운 개념의 조직원리를 디 혹은 카오스(혼란)와 오더(질서)를 합성해 '카오딕'이라는 신조어로 명명했다. 디 혹의 저서 '카오딕'(권진욱 옮김, 청년정신, 1만6천원)은 비자인터내셔널의 창업에서 조기 은퇴 및 카오딕 원리의 사회적 실천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비즈니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한 뛰어난 기업가의 체험기에 머물지 않는다. 조직 속에 개인을 매몰시키는 20세기형 조직원리를 뛰어넘어 자유롭고 자율적인 사회를 향한 야심찬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김갑수(시인.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