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그림이 1백년 동안 12명의 주인을 만난다. 첫번째 주인은 그림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계수 요한나 반 고흐. 동생 테오가 형을 따라 세상을 뜨자 그림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 것이 된다. 요한나는 시아주버니의 그림을 함부로 내다팔지 않았다. 생활고에도 때를 기다리며 6년간 간직했다. 최근 번역된 '가셰 박사의 초상'(신시아 살츠만 지음,강주헌 옮김,예담,1만8천원)은 고흐의 인물화를 소장했던 사람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이 덴마크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을 거치는 동안 잠시나마 그것을 소유했던 수집가들의 삶을 소설식으로 엮어나간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고흐가 자살하기 수주일 전 그렸던 작품.가셰 박사는 고흐의 정신 치료를 맡은 신경과 전문의였다. 환자였던 고흐는 의사인 가셰에게서 자신과 닮은 병적인 징후를 보았고 가셰의 초상화를 자화상 그리듯 그려냈다. 네덜란드 요한나 집에 걸려 있던 '가셰…'는 1896년 프랑스를 거쳐 덴마크로 넘겨진다. 코펜하겐의 전위예술 애호가 것이었던 '가셰…'는 8년 후 시인 호프만스탈과 화가 뭉크의 친구였던 독일 바이마르 박물관장 케슬러의 소장품이 된다. 1910년 블룸스버리 그룹의 평론가 프라이는 케슬러의 소장품을 빌려 영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영국인들은 '가셰…'를 배멀미에 시달린 노인 같다고 비웃었다. '가셰…'는 1911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 팔리지만 1930년대 퇴폐 예술품으로 낙인찍힌다. 히틀러의 수하였던 헤르만 괴링은 박물관으로부터 '가셰…'를 압류,외국에 판매함으로써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자 했다. 은행가 쾨니크스가 '가셰…'를 사서 유태인 금융업자 크라마르스키에게 다시 팔았다. 크라마르스키는 2차대전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50∼60년대 '가셰…'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은 한 장의 명화가 경제 부국들로 계속 이동해가며 여러 주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대의 사회 경제 상황과 그 속의 인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대기이기도 하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