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쁘다. 대전사에서 내원마을까지 여유만만한 십리(4.8km) 흙길. 발그스레히 만개한 겹벚꽃, 그보다 더 붉은 수달래와 파릇한 새순의 모양새가 아기자기한 폭포의 소란스럽지 않은 물소리와 그렇게 잘 어울릴수 없다. 막바지 물씬한 봄내음에 발걸음도 가벼운 가족산행길. 지난 주말 청송의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周王山.7백20.6m)은 백두대간이 남으로 달리다 청송땅에 기운을 뭉쳐 빚어놓은 산. 높지는 않지만 하나의 바위로 우뚝한 형세가 예사롭지 않다. 원래는 기묘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해서 석병산이라 했다. 전설이 그 이름을 바꾸었다. 당나라 때 스스로를 후주천왕이라 부르며 반란을 일으켰던 주도가 이곳까지 쫓겨와 도적의 무리가 되었는데 신라 마장군의 철퇴에 최후를 맞았다. 훗날 나옹화상이 그의 넋을 위로하며 주왕산으로 고쳐 불렀다는 것. 산행(5월31일까지 대전사~1.2.3폭포~내원마을코스만 개방)은 주왕산의 수문장격인 기암봉이 뒤에 버티고 있는 대전사에서 시작, 활짝 핀 겹벚꽃과 어울린 경내풍광이 더 나가지 않고 되돌아서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대전사에서부터 적당한 폭으로 잘 다듬어 놓은 오솔길 오른편으로 주방천의 깊지 않은 계곡이 이어진다. 1폭포까지가 하이라이트. 때맞춰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한 계곡양편에 주왕산의 5월을 대표하는 붉은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주왕의 마지막 선혈이 꽃으로 피었다는 수단화(壽斷花.水丹花), 산철쭉이다. 멈춰 있는 듯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에 비친 수달래의 붉은 빛에 오랜 전설이 환영 처럼 번진다. 아래로 내려서 그 멋을 모두 느낄수는 없지만 함께 한 산행객의 입가엔 '얼씨구 좋다~' 흥얼거림이 떨어질줄 모른다. 수달래를 향해 아래로 빼앗긴 눈길은 시루봉과 학소대를 맞아 하늘로 향한다. 떡을 찌는 시루 같이 생긴 바위가 우뚝하다. 바위꼭대기에서 공부하던 도사를 위해 신선이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의 바위다. 바로 앞에는 학소대가 있다. 일본인 포수에 의해 짝 백학을 잃은 청학의 슬픔이 배인 수직절벽. 여느때와 다른 울음소리로 큰 바위가 덮친 암자의 스님을 구한 학의 얘기도 전한다. 곧 이어지는 1폭포는 입을 벌어지게 만든다. 손을 대 갈라놓은 것 같은 거대한 바위틈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주왕굴, 주왕암을 보고 되돌아서, 1폭포를 지나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 한층 수수한 길을 걷는 맛이 남다르다. 도중에 샛길로 들어가는 2폭포는 푸근하고 3폭포에선 가슴이 트인다. 그러나 젊은 총각만 데려 간다는 2천년 묵은 처녀귀신이 있단다. 여름철 폭포아래 소에서의 수영은 절대금지다. 색이 바랜 듯 허연 산철쭉을 보며 걷다보면 어느새 내원마을. 당산목의 나이대로 4백여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오지마을이다. 한참 때는 70여가구를 헤아렸는데 6.25이후 대부분 산을 내려가고 지금은 토박이반장댁, 본동댁 등 일곱집만 산다. 내원분교를 개조해 주막을 차린 내원산방을 시작으로 산행객들의 푸근한 중간 휴식처 역할을 한다. 태양열설비를 갖춘 집을 제외하면 아직 전기 없이 촛불로 밤시간을 지낸다. 50~60년대 오지마을 그대로의 모습. 공기맛도 다르다. 사발에 담아 내놓는 내원산방의 전통차가 꿀맛. 동생의 산방일을 돕는 경주 이씨라는 아저씨에게 값을 치르려는데 "어, 무얼 드셨지?" 물속에 뿌리내린 왕버들의 주산지로 정한 다음 여정이 아니라면 그냥 눌러앉고 싶은 마을이다. 청송=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