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고향인 분들의 말을 빌리면 평양냉면이 주로 겨울용이었던데 비해 함흥냉면은 여름에 즐겨 먹었다고 한다. 또 평양냉면은 물냉면밖에 없었고 함흥냉면은 무조건 비빔형식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 면발이외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졌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의 면발은 완전히 다르다. 메밀이 주원료인 평양냉면에 비해 함흥냉면은 고구마에서 뽑아낸 전분으로 만든다. 이 때문에 잇몸만 있어도 먹을 수 있다는 평양냉면과 달리 함흥냉면은 고무줄처럼 질긴 게 특징이다. 필자가 어린시절 함흥냉면을 먹을 때에는 가위가 따로 비치돼 있지 않았다. 아무리 씹어도 끊어지지 않고 아무리 삼켜도 끝이 안 보이는 함흥냉면 때문에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질길수록 기뻐하는 함흥냉면의 마니아가 되어 가위손 아줌마가 가까이 오면 왼손으로 냉면그릇을 방어하곤 한다. 물어보지도 않고 가위부터 들이대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함흥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몇 가지를 알아보자. 첫째 자르면 안 된다. 길다란 냉면가닥을 일부는 빨아들이면서 일부는 끊어가면서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고수들은 냉면가닥의 한쪽 끝은 위 속에,다른 쪽 끝은 냉면그릇 속에 있는 상태를 최상의 경지로 여긴다. 치아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르지 않은 함흥냉면에 도전해보기 바란다. 처음에는 조금씩(네댓가닥 정도만) 집는 것이 요령이다. 둘째 냉면을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쳐야 맛있다. 함흥냉면에 있어서 겨자는 필요 없지만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식초를,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기름을 더 넣으면 좋다. 단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설탕은 약간 넣어야 한다. 맛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셋째 면사리를 헹굴 때 물기를 덜 뺀 냉면은 양념이 덜 묻고 간도 약해져 맛이 없게 마련이다. 잘하는 집이라도 주방장이 자리를 비우거나 신경을 안쓰면 물기가 흥건한 냉면이 나올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간장과 양념을 조금씩 더 넣고 오래 비벼주면 놀랄 정도로 맛이 좋아진다. 오장동함흥냉면(오장동.02-2267-9500)=냉면 맛이 산뜻하고 깔끔하다. 수십 년 동안 맛의 변화가 없을뿐더러 카운터를 딸이 이어받은 것 이외에는 주방과 홀 담당들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체인점은 물론 분점낼 생각도 안 한다. 흥남집(오장동.02-2266-0735)=현존하는 함흥냉면집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 냉면은 참기름이 많이 들어가 고소한 맛이 특징이고 메뉴중에 회와 고기가 다 들어간 섞임냉면이 특색 있다. 신림동 분점에 이어 최근 잠실점을 오픈했지만 냉면의 특성상 본점과 맛이 똑같지는 않다. 명동함흥면옥(명동.02-776-8430)=명동은 함흥냉면의 메카인 오장동에 비하면 변방취급을 받지만 이 집은 수준급 냉면을 낸다. 오장동의 양대산맥인 오장동함흥냉면 흥남집과 함께 3대 함흥냉면으로 꼽힌다. 냉면은 오장동함흥냉면 식의 산뜻한 맛이다. 서비스도 그만.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육수를 따라준다. 해주냉면(잠실 신천역 부근.02-424-7192)=정통 함흥냉면은 아니지만 질긴 면발이라 함흥냉면 계열로 분류된다. 한 그릇에 3천원으로 저렴한 가격과 엄청나게 매운맛이 특징이다. 무심코 양념을 더 넣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 /최진섭.맛칼럼니스트.MBC "찾아라!맛있는 TV" 책임PD(choijs@m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