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 패션쇼는 한편의 공연예술처럼 보였다.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한 컬러,위엄을 강조한 풍성한 실루엣,무용을 하는 듯한 모델들의 몸짓...역동적이고 현란한 무대는 새 의상을 선보이는 "패션쇼"라기 보다 의상을 주인공으로 세운 "무언의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듯 했다. 앙드레김이 패션쇼에 반드시 "스타"를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로서의 패션"을 강조해온 그는 "감성과 표현력을 지닌 연기자를 통해 내가 전달하고 싶은 패션예술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앙드레김 패션 판타지아"도 이런 컨셉에 충실한 무대였다. 고갱의 명화를 가슴에 넣은 흰색 수트들로 시작된 쇼는 "2003년 스프링&섬머 판타지","로맨티시즘과 예술의 세계","동양왕실의 광시곡","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일곱빛깔 전설","마리아 나의 영원한 사랑 그리고 꿈"등 다섯가지 주제로 이어졌다. 내년도 봄.여름을 겨냥한 타운웨어는 당당함이 두드러졌다. 커다란 흰색 칼라를 올려 세운 블랙.화이트 줄무늬 정장.세련된 블랙 공단 수트와 투피스,호피무늬 시스루 블라우스등이 눈길을 끌었다. 멜론,귤색,살구색,타는듯한 빨간색 화사한 색감도 인상적이었다. 이브닝 드레스와 원피스는 앙드레김이 한결같이 추구해온 여성적 낭만미가 주제.어깨를 드러낸 원피스,주먹만한 꽃자수가 상하의로 이어지는 드레스 등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치마 끝단에 섬세한 꽃무늬가 놓인 연분홍 원피스에 진보라색 시스루 상의를 어울린 원피스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은 한다발의 부케처럼 돋보였다. 탤런트 최지우가 입고 나온 쪽빛 도포도 관객을 압도했다. 용(龍) 잉어 등 동양적 문양을 황금빛으로 수놓은 가운은 왕실의 기품있는 스타일로 서양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앙드레김 무대에서 빠지지 않는 "일곱겹 드레스".단골모델인 러시아 출신의 모델 율라가 맡았다. 한겹 한겹 또 한겹.2천여 관객들은 모델이 단아한 몸짓으로 한복 두루마기를 닮은 색색의 드레스를 벗어나가는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봤다. 칠겹드레스는 구약시대 살로메가 헤롯왕을 유혹하기 위해 춤출 때 입었다는 일곱겹의 베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여기에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한과 그리움을 담아내고 싶었다는게 앙드레김의 설명이다. 무대는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배용준.최지우 커플이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마무리됐다. 딸과 함께 패션쇼를 지켜본 호주인 켈리 올리버씨(45.여)는 "화려한 색감과 선이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특히 용 무늬가 수놓아진 드레스가 압권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앙드레김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동양적 신비로움을 향한 그리움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재창조하는게 목표"라고 했다. 시드니=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