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전음악계의 최대 잔치인 2002 교향악축제(4월1~12일)가 내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멘델스존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라는 주제로 낭만과 근대의 교향곡들을 중심으로 공연된 이번 행사는 14회째를 맞아 청중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교향악 축제가 되기 위한 고심의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주최자인 예술의전당이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협연자로 대거 포진시킨 점은 이번 교향악 축제가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고전음악계에서도 인식의 전환과 세대 교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연주곡을 보면 차이코프스키를 위시한 러시아 레퍼터리가 상당히 많았고 말러 교향곡이 2번과 4번 두 곡이나 연주된 것도 특기할 만했다. 폐막 공연이었던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의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협연 이유홍)과 말러 교향곡 4번 연주는 이번 교향악 축제의 장원 감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에너지 넘치고 알맹이로 가득찬 뛰어난 공연이었다. 장윤성이 지휘한 울산시향의 대작 말러 2번 '부활' 교향곡 연주는 오랜 준비 기간만큼이나 울산시향의 입지를 한 단계 올려 주었으며 울산시향의 미래를 주목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상임지휘자 임헌정이 오랜만에 복귀한 부천시향은 세련된 화음과 깊은 사색이 담긴 내적 밀도로 브람스 교향곡 4번과 슈만 첼로 협주곡(협연 양성원)을 연주해 냈다. 이동호가 지휘한 제주시향의 개막 공연도 하차투리안과 라벨 곡을 통해 패기와 기세 넘치는 춤곡의 향연을 들려주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들로만 꾸민 박은성 지휘의 수원시향 공연은 볼륨감 있게 러시아 곡들을 연주했지만 다소 거칠어 부분적 세공이 아쉬웠다. 한편 전주시향 대구시향 서울시교향악단은 협연자와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아 안타까웠다. 협연자와의 무대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박태영이 지휘한 전주시향의 글라주노프 4번 교향곡 한국 초연이나 곽승이 지휘한 부산시향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2번 연주,마르크 에르믈레르가 지휘한 서울시향의 '만프레드' 교향곡도 칭찬받을 만한 레퍼터리 선택이었다. 안타깝게도 서울시향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은 이틀 전인 14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난 고 마르크 에르믈레르 자신의 만가요 레퀴엠이 되고 말았다. 협연자 중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을 품격 높게 연주해낸 첼리스트 이유홍,단단한 기량과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준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가장 빼어났다. 장일범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