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IT(정보기술),BT(생명공학 기술),NT(나노기술)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을 것이다. 선진국마다 많은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미래의 유망한 분야라고 하고 우리나라도 앞으로 국가전략과학기술로 집중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니,일반인들도 이 3T가 중요한 과학기술분야임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정보기술은 무선전화와 인터넷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상태이고 생명공학 기술은 생명복제와 의약품 관련 연구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나노기술은 원자와 분자기술이라고는 하지만 비(非) 전문가들에게는 알듯 모를 듯한 것이 사실이다.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이인식 엮음,김영사,1만2천9백원)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소개서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나노기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응용분야를 이미 수십년 전부터 예언한 유명 강연과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40여년 전인 1959년에 나노기술의 가능성을 물리학적 이론으로 설파한 리차드 파인만 교수의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라는 강연을 비롯해 나노기술의 고전적 이론서로서 인정받는 에릭 드레슬러의 '창조의 엔진'(1986),크랜달의 '분자공학이란 무엇인가'(1996) 등의 주옥같은 글들이 엮은이의 글과 함께 실려있다. 나노기술의 역사적 성장 배경과 선각자들이 본 무한한 응용 가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다. 이어 2부와 3부에서는 나노기술의 구체적인 예와 현재까지의 발전 상황,한국의 연구수준,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 방안 등에 관한 각계 전문가들의 글을 모았다. 선각자들이 본 미래에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가 있는지,한국이 세계 선진국 틈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떠한 전략이 필요한지 등에 관한 논의가 일목 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여타 소개서와 크게 다른 특징은 제4부에서 나타난다. 나노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그 역작용에 대한 경고도 엮은이의 글과 빌 조이의 '왜 우리는 미래에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2000)라는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떠한 기술의 발전에도 순작용과 함께 역작용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일찍이 로봇공학 전문가인 한스 모라벡은 '마음의 자식들'(1988)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로 이식되고 기계가 진화의 주역이 되는 미래를 묘사한 바 있다. 빌 조이는 나노 기술의 발달이 이처럼 정신을 가진 '나노 로봇'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주고,나노 로봇들이 자기복제를 통해 스스로 증식하기 시작하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같은 경고가 인문 철학자나 러다이트(기계 혐오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 컴퓨터 회사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공동 창립한 컴퓨터 과학자 빌 조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나노 기술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을 얻기 위하여는 이처럼 기술발전의 역작용을 우려한 글도 읽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수준높은 소개서로 추천할 만하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