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외관에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도심주택을 구경하기란 생각보다 쉽지않다. 지척의 옆집을 기죽이지않고 이웃과의 정을 가로막지 않은 집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은 대개 육중한 자태로 옆 집을 제압하듯이 들어서있다. 되도록이면 이웃과 단절되기를 원하는 듯한 모양으로 힘을 잔뜩 주고 있다. 높고 두꺼운 담장,여러겹의 창문,육중한 철문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안팎으로 똘똘뭉친 폐쇄성과 안하무인의 모양새가 요즘 도심 현대주택의 패션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같은 숨막히는 철벽패션에 온 몸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집도 있다. 이러한 집 덕분에 삭막한 도심에 숨통이 트인다. 최근에 지어진 서초동 우면동주택도 그런 집에 속한다. 수수한 외관이지만 잘 짜여진 조형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외부를 향한 개방성도 뛰어나다. 이 집엔 길가 담장이 없다. 집 앞을 스치는 이웃을 향해 개방시켜 놓기위한 의도다. 맞은 편 땅에 언젠가 새로운 이웃이 들어설 것에 대비,부엌쪽으로는 쪽창을 만들어놨다. 새로 들어올 이웃과 자잘한 삶의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하기위해서다. 이 곳을 통해 흐르는 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웃간 정을 더욱 끈끈하게 할 것이다. 대문을 열면 깊은 마당이 드러나고 집안으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이 마당에는 조각가인 집주인이 만든 작품들이 놓여지면서 자연스럽게 작품 전시장이 됐다. 언젠가는 한 조각가의 작품을 보존하는 아름다운 기념관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다기능 공간이다. 거실은 마당과 직각으로 접해 있다. 안팎공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앞뒤로 창을 개방시켜 놓았다. 창문을 모두 열어놓으면 뒷마당 실바람이 거실의 구석구석을 스치고 앞마당의 나뭇잎을 살랑거리게 한다. 부엌 옆에는 작은 목재 테라스가 놓여있다. 한여름 저녘무렵 이웃을 초대,한끼 식사를 같이하면 더욱 분위기가 살아날 것 같은 공간이다. 현관에 들어서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거실로 통한다. 다른 통로는 손님용 화장실과 다용도실,부엌으로 이어진다. 거실을 거치지않고 부엌 물건을 들여놓을 수 있게 하기위한 통로다. 2층으로 올라서면 우면산의 경관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로 만든 데크 건너편에 손님방이 보인다. 손님방은 다시 건너편 주인작업실로 이어진다. 작업실은 1층의 서재와 계단으로 연결된다. 작은 집안의 동선이지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구성된 모양이 깔끔하다. 2층 침실에는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 각각의 수평창이 있다. 각 방에 흘러드는 풍경을 좀 더 많이 맞아들이기 위한 모양새다. 이로써 한쪽 방에는 가까운 풍경이 들어오고 또 다른 방에는 먼거리 경치가 수평창에 그려진다. 집 안팎에 자잘한 공간도 놓치지않고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눈길을 끈다. 서쪽방 창밖에는 벽이 하나 서있다. 모양새보다는 늦은 오후 서쪽 뙤약빛을 막기위한 것이다. 벽과 창문사이에 놓인 작은 테라스도 재미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잠옷바람의 아이들이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시면서 마음껏 기지개를 켤 수도 있는 곳이다. 외관과 내부공간이 실용성에 따라 서로 맞물려 있는 모습이 멋스럽다. 우면동 주택은 옛날 시골집처럼 집 주위를 잘 둘러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안마당 뒷마당 외부작업장 등의 외부공간은 집앞 도로와 연결돼 있다. 거리에 접한 2층 외벽에는 무채색 페인트로 단장을 했다. 지붕 위에 검은 기와를 얹어 자연보다 두드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전통주택의 조신함을 살짝 차용한 것이다. 이 집의 외부는 좀 색다른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돼 있다. 외장마감재로 흔히 쓰는 유로폼패널에다 얇게 켠 소나무 판재를 사용,노출 콘크리트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존 노출콘크리트 방식으로 시공하면 돈이 많이 들기때문에 건축가가 새롭게 고안해낸 것이다. 넉넉치않은 형편의 고객을 위해 건축가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면동 주택은 어쩔 수 없이 비좁게 모듬살이를 해야하는 도시에서 내집과 이웃,주변환경 등이 어떻게 어울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지어진 집이다. 물론 확실한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건축메모 규모:대지면적-102평,건축면적-49.6평,연면적-81평,지상2층 지하1층. 위치:서울시 서초구 우면동,구조-철근콘크리트,건축비용-평당 4백만원 설계:건축사사무소 건축문화 김영섭 소장 (02)574-3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