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불개체(改命不改體)라,이름은 바뀌었지만 본바탕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근본자리에서 (종정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고 해서 이 산승(山僧)이 뭐 달라지고 변한 게 있겠습니까" 조계종 제11대 종정에 새로 추대된 법전 스님(法傳·77)은 2일 해인사 퇴설당 앞마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청정본연의 세계에 사는 수행자가 종정이라는 지위와 이름에 끄달리겠느냐는 뜻이다. 법전 종정은 "지극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지위와 이름이 없다(至人無名)고 했다"면서 "출가인에게 이름과 지위는 따지고 보면 자기를 더럽히는 일"이라고까지 했다. 수행자는 오로지 수행할 뿐 다른 것은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종단운영 방침에 대해서도 법전 종정은 지계(持戒)를 첫번째로 꼽았다. "계행이 청정해야 수행도 하고 이웃도 도울 수 있습니다. 똥을 담은 바가지에 아무리 깨끗한 물을 부어도 똥물밖에 되지 않듯이 그릇이 깨끗해야 올바로 수행할 수도 있어요. 그래야 캄캄하던 사람에게도 지혜가 생겨서 사람이 바르게 돼요. 사회에서도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수행을 하면 생각과 행동과 말이 바르게 되니 그게 사회의 거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법전 종정은 1백20세까지 살면서 80세까지 다른 이를 찾아다니며 배우고 또 가르쳤던 조주 스님의 예를 들어 수행자들에게 끊임없는 공부와 정진을 강조했다. 불교와 조계종단의 모든 문제는 스님들이 수행을 잘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므로 수행만 잘하면 다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지극한 수행으로 자기의 안목부터 연 다음 그 수행력을 사회로 돌릴 때 수행이 참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명(無明)과 탐욕으로 자기를 잃고 있어요. 무명과 탐욕에서 자각의 눈을 떠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실상을 자각해야 존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어요. 나는 아미타불이 만든 극락도,하나님이 만든 천당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성(自性)을 깨치면 그게 바로 천당이요 극락이니 내 손으로 만든 극락과 천당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반드시 수행하세요" 법전 종정은 또 "수행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가난부터 배워야 한다"며 기한발도심(饑寒發道心·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생긴다)을 강조했다. 지금 같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는 절대로 도인이 나올 수 없으므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평소 소욕지족(少慾知足)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면서 송나라 때 굉지정각(宏智正覺) 선사의 훈계를 들려줬다.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알아서 부귀를 탐내지 말라.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수행에만 뜻을 두라' 후학들에게도 '젊고 힘 있을 때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당부한다. 법전 종정은 "봉암사 결사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때 큰스님들이 공부시키려고 애쓸 때 뼈가 부서지도록 공부하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된다"며 "혜암 전 종정 말씀처럼 공부하다 죽을 각오로 살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듯 수행자는 정진하다 좌복 위에서 죽는 게 가장 올바르고 떳떳한 일이라는 말이다. 법전 종정은 또 평소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내근극념지공(內勤剋念之功)하고 외홍부쟁지덕(外弘不爭之德)하라'는 말을 소개했다. 안으로는 부지런히 수행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쌓는다는 뜻이다. 승려의 본분인 수행에 힘쓰면서 덕을 쌓아야 안팎이 조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높이 43m 규모의 세계 최대 청동대불 조성계획으로 논란을 빚은 데 대해 법전 종정은 "해인사의 어른으로서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특별히 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동대불 조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원안보다 축소해 조성할 것임을 시사했다.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칭찬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요. 내 허물을 먼저 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리를 파할 즈음 법전 종정은 '한산자장여시(寒山子長如是·한산자는 항상 변함이 없어서 ) 독자거불생사(獨自去不生死·홀로 스스로 가고 생사가 없다)'라는 애송시를 들려준 뒤 선물을 하나 주겠다고 했다. "당나라 때 투자의청(投子義淸) 선사가 자기를 찾아온 한 수좌에게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라고 묻고 수좌가 '칼산에서 옵니다'라고 하자 '칼을 갖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좌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는데 그 뜻을 아는 분 있습니까" 법전스님은 아무런 답이 없자 "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인사=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