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랑하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공연이 지난달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소프라노들의 날아갈 듯한 가벼운 질량의 목소리와는 두께가 다른 리릭 소프라노인지라 한국 무대에서 우리 청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큰 관심사였다. 우아한 와인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플레밍은 첫 곡으로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 '알치나' 중 '사랑하는 이여,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는지'를 불렀다. 플레밍은 탄탄한 발성으로 바로크 곡에서 요구되는 트릴(떨림)과 스케일(짧은 박자를 연속적으로 부르는 것) 기교를 깨끗하게 처리해냈다. 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독일 가곡 '쉬어라 내 영혼아''사나운 날씨''감미로운 날씨''세실리'를 통해 독일 가곡에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1부의 마지막 순서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마르게리트의 아리아 '보석의 노래'와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중 '루살카의 달의 노래'.그러나 이 두 곡은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석의 노래'를 부를 때 플레밍은 지나친 여유로 인해 젊은 아가씨 마르게리트의 떨리는 가슴 대신 나이 지긋한 마르게리트를 만들어 냈으며 음도 정확한 피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주 떨어졌다. 2부는 국내 무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곡인 드뷔시의 '빌리티스의 3개의 노래'로 시작했다. 플레밍은 이 곡을 통해 미국 가수들이 좀처럼 극복해내지 못하는 유럽 언어들을 뛰어나게 구사했다. 또 얼굴 공명을 이용한 발성으로 세련미를 더했다. 이어서 플레밍은 라흐마니노프의 러시아 가곡에까지 도전했다. 물론 러시아 가수만큼의 만족도는 없었지만 라흐마니노프의 가곡들을 호소력 있게 소화해냈다. 마지막 무대는 허벨과 골든이 '나비부인'을 패러디해 작곡하고 데이브 그루신이 편곡한 '가련한 나비부인'과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 아리아 '어떤 갠 날'의 접속곡이었다. 대단히 미국적이었던 '가련한 나비부인'은 이날 레퍼터리 중에서 플레밍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곡이었다. 앙코르로는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김동진의 신아리랑/민요아리랑 접속곡,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 중 '서머타임', 칠레아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중 '나는 창조의 신의 충실한 하녀' 이렇게 모두 4곡을 불렀다. 한국 청중과 처음 만난 르네 플레밍의 이번 무대는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그리고 한국 곡까지 소화해 내면서 그녀의 뛰어난 언어 능력과 나무랄 데 없는 테크닉을 선보였다. 그러나 유럽 오페라에서의 한계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