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는/빗방울에도 상처가 있습니다//눈오는 날에는/눈송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눈비 그치면/햇살에도 상처가 있습니다'('상처' 전문) 시인 정호승씨(52)의 손은 갓난아이마냥 부드럽다. 손금 또한 은은하다. 고사리 같은 시인의 손길로 그는 어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가만히 다독거리는 체온을 더듬어보면 할머니의 약손처럼 온몸이 따스해져오는 느낌.어른이 읽는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열림원)는 이처럼 포근하고 다정하다. 84편의 시가 아이의 키만큼 짧고 순정하지만 행간 속에는 차가운 세상의 바람을 감싸주는 '목장갑'이 숨겨져 있다. '나무는 그림자가 밟힐 때마다/온몸에 멍이 들어도/동상에 걸린 발을/젖가슴에 품어주던 어머니처럼/사람들의 발을/기꺼이 껴안아' 주는 것이 '나무의 마음'이라고 시인은 일러준다. 그가 '기린은/욕심이/좀 많은가 봐/목에/꽃다발을/많이 걸려고/저렇게/목이 긴 거야'('기린' 전문)라고 노래할 때는 세상 전체가 신선하게 팔랑거린다. '눈이 내린다/배가 고프다/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동생이 빵은 먹고/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그러자고 했다'('붕어빵') '아빠,왜 북두칠성이야?/별이 일곱 개니까/그럼 내가 별이 되면?/그야 북두팔성이지'('북두칠성')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이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그곳에서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상상력이 이뤄내는 기쁨을 만나는 재미도 크다. '엄마가 날 낳기 전/나는 무엇이었을까/(…)/아마 엄마가 날 낳기 전/나는 엄마의 사랑의 마음이었을 거야/마음의 중심에 있는/작은 씨앗이었을 거야'('씨앗') 해맑은 동심의 화선지 위에도 밝은 색칠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새우를 먹으면서 '아들과 남편을 풍랑에 잃고/등이 굽을 때까지/평생을 바닷가에서 사신 할머니'를 생각한다. 소년의 꿈은 흙으로 밥을 짓고 풀잎으로 반찬을 만들며 강물로 국을 끓이는 것.함박눈으로 시루떡을 찌고 노을로 팥빙수를 만들어 결국 '이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아무도 없도록' 만드는 게 소원이다. 7행으로 이뤄진 '민들레'는 일곱 줄의 현악기만큼 눈물겨운 울림을 준다. '민들레는 왜/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피어날 때가 많을까//나는 왜/아파트 뒷길/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우는 날이 많을까' 시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 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