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71.홍익대명예교수)화백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면 서승원(61.홍익대 교수)화백은 그 바통을 이은 추상미술 2세대 작가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나란히 개인전을 갖고 있다. 이들은 평생 "형상없는 그림"을 그려왔고 미술계에 "홍대인맥"을 주도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 화백은 50~60년대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서막을 알리는 앵포르멜(비정형회화)운동의 기수였다. 이에 반해 그보다 10년 후배인 서 화백은 추상미술의 맥을 같이하면서도 앵포르멜을 거부하고 기하학적 추상운동을 이끈 핵심멤버였다. .............................................................. "지난날 나는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라고 선배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젠 똑같이 '앞서가는 똥차 비키시오'라고 부메랑처럼 내게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말 칠순을 맞은 박 화백이 화집 '에스키스 드로잉' 출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내뱉은 일성(一聲)이다. 무섭게 쫓아오는 후배들을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담겨 있는 대목이다. 그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누구 못지않게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올해 전시만도 현재 열리고 있는 갤러리현대(4월7일까지)를 비롯해 박여숙화랑(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4월) 서울 갤러리세줄(5월) 대구 시공갤러리(9월)에서의 개인전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그의 전매특허인 '묘법(描法)' 시리즈를 내놨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색과 깊이의 변화다. 그동안 고집해 온 흑색에서 벗어나 흑색 위에 백색을 바르거나 보라빛이 나도는 바탕에 붉은 색을 덧바른 작품도 선보였다. 캔버스 위에 덧붙인 한지의 입체감이 종전보다 강해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묘법'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이를 '자기 비우기'라고 설명한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국어노트 네모칸에 이름을 쓰다가 글씨가 자꾸 칸 밖으로 튀어나오자 고무로 지우고 결국엔 연필로 마구 지워버리는 모습을 우연히 봤지요. 그것이 묘법의 출발이었죠" 묘법의 동기는 요컨대 체념적인 지우기였다. 작가로서 감정을 억제하고 몰개성적이면서 탈표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는 "예술가가 주(主)가 아니라 돌 종이 나무 등의 사물이 스스로 주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부터 한지를 회화 속으로 유입시켰다. (02)734-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