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회화기법의 하나인 지두화(指頭畵, 指畵)가 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11일 지두화가인 고홍선(高洪先.40.대구시 서구 평리동.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전수자)씨에 따르면 이 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 생겨나 청나라 화가 고기패(高其佩)가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붓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이나 손톱 끝에 먹물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특히 원시시대 붓과 같은 미술도구가 발달하기 전 모든 미술이 인간의 손만으로 이뤄질 때 화법을 그대로 이어 발전시킨 것으로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화법 중 하나이다. 또 붓으로 그린 그림에 비해 선이 힘없이 나가는 듯하거나 또는 날카롭게 그어지는 독특한 효과를 표현할 수 있어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훨씬 더 표현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 전해진 지두화는 저잣거리 한쪽에서는 줄타기가, 다른 한쪽에서는 판소리가 울려 퍼지던 곳에서 그려진 음악과 춤이 함께 한 전통 민중 예술이었다. 이 때문에 고씨는 지두화를 그릴 때 전통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신명이 최고에 이를 때 비로소 손끝에 먹물을 묻히기 시작하는 독특한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두화는 18세기에 활동했던 심사정(沈師正)이나 최북(崔北), 허유(許維) 등의 화가들이 가끔 그려졌지만, 한 작품을 마치면 손톱이 닳아 없어지는 등의 큰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탓에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 뒤 구한말과 일제를 지나면서 전통의 명맥은 끊어졌지만 10여년전 서울 한 대학 박물관에서 지두화를 접하고 이에 반한 고씨의 노력에 의해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9살 때부터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 화백이 세운 연진미술학교에서 한국화의 기초를 닦은 덕분에 고씨는 혼자서 지두화에 관한 고문헌과 중국과 조선시대 화가들의 유작을 찾아다니며 기법을 익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의 지두화를 복원해냈다. 고씨는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2001 봉산미술제'에서 시연을 펼쳐 큰 호응을 받은 것을 비롯해 서울 인사동 등에서 열린 여러 문화 행사에 참가해 지두화 그리기 시범을 하고 화법을 정리한 책을 펴내기로 하는 등 민족의 전통 알리기와 계승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불우이웃돕기 자선 행사에 참가해 그림을 발표하는가 하면 손끝이 닳는 아픔을 겪고 그린 그림을 관공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는 등 아직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지두화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고씨의 이런 노력에도 전통의 지두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다시 그 맥이 끊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수년 전 고씨의 지두화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림의 선(線)에 반한 서울의 명문 미대생들이 그 화법을 배우려고 연 이어 찾아왔지만 매번 손끝에서 시작, 온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떠나버렸다. 그렇지만 고씨는 고난과 고독, 한(恨)을 이겨내야만 그릴 수 있는 지두화의 특성을 잘 알기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한과 고통을 극복하고 지두화의 맥을 이어갈 젊은 화가가 나타나리라 믿고 있다. 고씨는 "전통이 하나씩 사라지면 민족의 미래는 없습니다. 르네상스를 거친 나라가 지금도 강국으로 존재하듯 우리도 사라져가는 문화를 하나씩 복원해 후대에 계승시켜 문화민족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민들은 오는 5월 열리는 '대구 약령시축제'에서 고씨의 지두화 시연과 함께 판소리공연, 붓대를 잡고 글을 쓰는 고씨 특유의 악필(握筆)시연을 볼 수 있다. (대구=연합뉴스) 이강일기자 lee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