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책,쉽지만 어려운 책,짧지만 무궁무진한 감동의 책. 이것이 바로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이케다 가요코 구성,한성례 옮김,국일미디어,6천8백원)이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63억명이 살고 있는 이 지구를 1백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해보면 어떤 일들이 생겨날까 하는 것이다. 너무 크고 복잡했던 여러 가지 통계숫자들에 가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지구의 문제들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온다. 이 글은 원래 미국의 여성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즈 박사가 쓴 것이다. 그러나 본디 1천명의 마을로 되어 있던 것이 1백명의 마을로 축소되었다. 즉 "세계가 만일 1000명의 마을이라면"이 e메일 한 통으로 변신해 전 세계 네티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면서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느끼던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고 글자나 말로 이해했던 것을 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 그만큼 커다란 지구,넓은 세계가 내 안방 내 마을의 일로 감촉되기 때문이다. 어느 새 세상을 보는 눈이 맑아지고 그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손은 사랑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처럼 부드러워진다. 지금까지 지구 환경의 문제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차고 큰 것이었다. 절실한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너무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지막 맺은 말에서 밝힌 것처럼 내가 이 마을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는 비정한 힘으로부터 이 마을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가령 이 세계를 1백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한다면 70명이 유색인종이고 30명이 백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지구에는 백인들보다 유색인이 훨씬 많다는 것을 유치원 아이라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구는 지금 백인 중시의 세계화로 나가고 있다. 나머지 70명들을 그냥 놔두고서는 이 마을이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년동안 마을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두 사람의 아기가 태어난다. 내년에는 마을 사람이 1백1명이 된다. 인구가 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자면 마을의 살림살이나 환경도 고쳐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구 문제가 내 마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반대로 지금은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지구를 이렇게 줄여놓고 보면 편안했던 일이 고통이 되고 고통이 희망이 되는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런 생각들이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에 퍼지면 정말 지구는 한 마을이 되고 63억명의 이야기들은 1백명의 사연으로 바뀐다. 그것을 이 저자는 온 세계를 감동의 물결로 휩쓴 "인터넷 민화"라고 말한다. 내 손으로 지구를 잡아라. 지구가 내 손 안에 있다. 이 작은 책이 어느새 이 거대한 지구를 보자기처럼 싼다. 기적은 언제나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일어난다. 이어령 < 이화여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