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왔다 간다" 유언이었을까, 열반송이었을까. 2000년 10월, 중광 화백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달마전을 열기에 앞서 일성을 내질렀다. 5년만에 대중 앞에 나타나 던진 화두였으나 거기에는 집모퉁이를 쓸쓸히 돌아나가는 바람의 고독이 묻어 있었다.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 화백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하나 더 달고 다녔다. 그만큼 승속(僧俗)을 자유자재로 오고가 파행의 대명사로도 불렸다. 예술가로서는 시(詩)ㆍ서(書)ㆍ화(畵)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그래서 그의 행적은 이야깃거리가 수두룩하다. 스님은 보통사람들의 광기를 흡수해주는 스펀지 역할을 자임하며 살았다. 세상에 가득한 속기나 때를 훔쳐내는 걸레이고자 했던 것이다. 남의 죄업을 대신하는 대속(代贖)효과로 그들의 삶을 긍정케 해줬다고 할까. 사람들이 `미친 스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그와 그의 작품을 통해 위안받았다. 스님은 열등감과 부족감에 찌들어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한결 못나고 이상한 삶으로 그들을 안도케 한 것이다. 못난 사람 중의 못난 사람이라는 뜻의 `걸레'를 자신의 별명으로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도 그때문이다. 조각가 최종태씨는 길들여진 눈으로 볼 때 스님의 작품은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바른 눈으로 보면 가슴으로 전해오는 진실의 울림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사념의 티끌이 묻을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가슴을 향해 감정이 돌진한다는 것이다. 스님과 함께 「유치찬란」이라는 시화집을 냈던 시인 구상씨는 `휘갈겨 놓으니 달마의 뒤통수요, 느닷없이 만난 은총의 소낙비'라며 그의 달마도에 감탄을 터뜨렸다. 시화집의 제목처럼 스님의 유치찬란함은 머리에서 멀고 가슴에서 가까웠다. 번쩍번쩍 빛나는 스님의 광기를 보고 홀딱 반한 사람으로는 장욱진 화백을 꼽을수 있다. 1970년대 말, 인사동에서 만나 스님의 인사를 받은 장 화백이 "중놈치고옷 한번 제대로 입었네"라고 대답하자 짜릿한 교감이 통해 의기투합했다. 중광이 닭을 그리면 장 화백은 닭과 입술을 맞댄 봉황을 그리고, 중광이 천애의 한 덩어리 바위를 그리면 장 화백은 그 위에 선경에 든 도인을 올려 앉히는 식이었다. 장 화백의 진면목은 스님이 알아봤다. "천애의 흰 구름 걸어놓고/까치 데불고 앉아/소주 한잔 주거니 받거니/달도 멍멍 개도 멍멍"이라는 내용의 `중광도인이 장도인(張道人)을 읊은 시'는 천진한 심성의 두 사람 관계를 잘 말해준다. 중광은 `중광도인'의 도인은 도인(道人)이 아니라 도인(盜人)이라고 깔깔 웃었으나 여기에는 사기꾼이 진인(眞人)을 알아본다는 특유의 역설이 담겨 있다. 스님은 삶의 방식 자체가 거침없고, 자유분방했다. 스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수녀가 찾아오자 "얼굴이 까무잡잡한 게 맛있게 생겼다"고 농을 던져 주위를 웃겼고, 벽에 걸린 예수 그림을 보고 "스님이 어찌 예수님이냐"고 묻는 방문객에게 "아, 그 예수보살 그림 말인가"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붓을 그냥 던져도 그림이 된다"는 식의 자랑도 스스름없이 늘어놓았으나 이 역시 때묻지 않은 천진함에서 연유했다고 할 수 있다. 스님은 무애의 상징이었다. 시문(詩文)에서 불교는 물론 유교, 기독교가 수시로등장하고 어떤 이는 그의 자유분방한 행각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을 생불(生佛)로 여겨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는 설법으로 이들을 감동시켜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서예에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왼손, 오른손을 같이 사용하면서 정통필법을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글씨를 쓰더라도 마지막 획부터 시작해 반대로 써 옆에 앉아 있는 구경꾼들이 종잡지 못하게 했다. 이런 글씨는 특출한 서예가들이 평생을 정진한 뒤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서체는 글씨를 갓 배운 어린이의 동자체(童字體)를 닮아 고졸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국내에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엇갈렸지만 국외에서 보는 눈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이 스님의 화문집 「미친 스님」을 펴내자 일본은 「큰 스님」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출간했다. 그의 예술세계는 미국 PBS, CNN과 일본의 NKH 등의 방송전파를 타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글 `백담사 산문일기' 중 일부-. "스님, 백담사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반은 백운처럼 살고 반은 바람처럼산다. 스님, 입적하시면 진신사리가 나올까요? 내가 죽으면 나쁜 음(陰)사리가 나올 것이다. 스님, 극락과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장자를 세우며) 잘 보았느냐. 극락은 주장자 머리에 있고, 지옥은 주장자 밑에 있다. 스님, 오늘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요? 어저께 검은 구름 한 조각 오려내어 심부름을 보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