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동우회사건에 연루돼 퇴사한 동전(東田) 오기영(吳基永.1909-)은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광복 후인 1948년 수기 「사슬이 풀린 뒤」를 출간하고 이듬해 고향인 북으로 가 활동했기 때문이다. 3.1 운동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의 혈육이 겪은 고통과 수난을 가족사의 시각에서 서술한 이 수기집이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 의해 54년만에 복간됐다. 성대 출판부는 이와 함께 해방공간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서민의 고통스런 삶을 대변하고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혼란을 풍자한 그의 여러 기고문도 한데 모아내놓았다. 「진짜 무궁화」. 「사슬이 풀린 뒤」는 1919년 3월 30일 황해도 배천읍 장날의 만세 함성과 함께 시작된다. 만세운동의 주모자였던 부친이 포승줄에 묶여 해주감옥으로 이송되는 참혹한 광경을 지켜본 오기영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장터에 나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다 일경에 잡혀 고초를 겪는다. 당시 11살 소년이었다. 이날 이후 5살 위인 형, 복중의 아우, 막내 누이와 매제까지 한 가족 모두가 독립투쟁의 험준한 행로를 걷는 운명적 과정이 현장감 넘치는 필치로 책에 기록돼 있다. 배재고보를 다니다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형 오기만(吳基萬)은 '상해한인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이 돼 조선에서 김형선(金炯善) 등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펼치다일경에 붙잡힌다. 고문, 재판, 출옥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에 대한 아우동전의 서술은 '역사'가 되지 못하고 사라져간 수많은 혁명가들의 생생한 초상이다. 일제의 폭정 속에 형과 매제를 잃고 그들의 독립투쟁을 지원해온 아내마저 잃은 동전은 옥에서 나온 아우, 조카와 함께 슬픔이 북받치는 해방을 맞으며 이 피묻은 기록을 남겼다. '공산분자의 파괴적 기록'으로 폄하하던 시대의 소용돌이 때문에 오랫동안 사장돼 있던 이 책에서 저자가 그토록 염원하던 '제2의 해방'이 아직껏 후세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우울함을 안긴다. (218쪽.9천500원) 동전은 해방 이후 조선일보의 '팔면봉'을 썼고 잡지 「신천지」 등에 글을 기고했다. 「진짜 무궁화」에는 당시의 기고 40여편이 담겨 있다. "이미 관중은 싫증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치무대에서는 여전히 파쟁극만을 연출하고 있으니 이들의 눈에는 그 많은 실업자는 보이지 않는가보다. 이 실업자들이야말로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 일제의 희생자요 파쇼분자도 아니며 민족을 반역한 일도 없는 소박하고 선량한 조선 동포들인데 어찌하여 민중을 위하노라는 애국자들인정치가들에게는 이 가엾은 동포들이 간과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쟁과적백(赤白)논쟁에만 혈안이 된 정치가들에 대한 일갈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않는 각종 세금 부과에 대한 갈성도 들린다. "오물청소 하나성의있게 깨끗이 못해내는 시당국이고 보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라고 그 많은 직원의 생활비를 시민에게 요구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다...세금 한 가지만 내면 또다시 무슨 부과, 무슨 갹금 하는 걱정이 없이 시민이 안도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방도를 시당국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하는 것도 물어보고 싶은 일이다"(40쪽) 글글마다 넘쳐나는 실업자, 교육의 기회가 배제된 농민들,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 사제 담배의 범람 등 온몸을 바쳐 얻어낸 해방의 공간에서 빚어지는 혼란과 암담한 현실에 몸부림치며 붓끝에 쏟아낸 절규가 스며 있다. (232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