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얼굴은 누구입니까" 오는 26일부터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 조광호(54)신부의 "나의 얼굴을 찾읍시다"전은 자신의 얼굴을 잃고 익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삶의 화두"다. 조 신부는 '얼굴'을 주제로 한 이번 개인전에서 버려진 대형 사전에 수묵 흑연가루로 그린 흑백 드로잉과 동판화 등 1백20여점의 얼굴 시리즈를 출품한다. 성직자로서 그동안 만났던 시인 상인 이방인 잡부 등의 여러 편린들이 '천의 얼굴'로 드러나 있다. 인물상들은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둡지만 신으로부터 소명받은 '연민의 빛'이 담겨 있다.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한 그는 신부가 된 다음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드물게 회화 판화 아이콘화(목패널화)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등 재료와 장르를 넘나들며 종교적 메시지를 현대적 표현양식으로 보여주는 국내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신부 작가다. 단일 스테인드글라스로선 세계적 규모인 부산 남천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60m27m)를 비롯해 서울 지하철2호선 당산철교 외벽벽화(250m6m)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 얼굴 시리즈는 10여년 전부터 틈틈이 그려온 수묵 드로잉과 동판화 중 40호 이하의 소품들만 모은 것."제 작품은 추상 작품이 많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구상적 요소가 필요해 그려본 것들입니다" 인간 군상들은 20세기 최고의 성화가로 불리는 조르주 루오의 작품을 보듯 어둡고 절망의 종점에 서 있는 표정들이다. 붓가는 대로 만들어지는 이목구비와 거친 얼굴의 윤곽선,무겁고 어두운 안면 분위기가 주류를 이룬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씨(홍익대 교수)는 "그가 그린 얼굴들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던 비극적 인간상의 편린들"이라고 평했다. 일종의 '자아 투영' 방식으로 타자의 얼굴들이지만 실은 작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살면서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많습니다. 현실은 어둠과 절망이라는 냉혹함이 잠재해 있지만 반면에 아름다움과 빛을 향한 근원적인 목적 지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 신부는 수묵 작업을 40여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고 한다. 검은 드로잉 작품이 많은 것도 검은 색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번 전시가 끝나면 오는 6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모란미술관과 12월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3월7일까지.(02)724-6317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