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세트가 관광명소로도 부각된 TV역사극 '태조왕건'이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고려의 개국사찰인 개태사, 후백제 견훤왕의 능 등 그 역사의 마지막 드라마를 그려볼수 있는 논산을 찾는다. 호남고속도로 서대전나들목에서 빠져 논산쪽 1번국도에 오르면 개태사를 만난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재위 19년(936년) 후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뒤 친히 세운 개국사찰. 왕건은 "부처님이 받들어 주고 산신령이 도와주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었다며 불당창건을 명하고, '산의 이름은 천호, 절의 이름은 개태라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 이는 천호산 일원이 고려의 삼국통일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내포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건은 그해 6월 천안에 전진사령부를 차린다. 유폐되었던 금산사에서 한해전 탈출, 고려에 몸을 의지한 뒤 '반역한 자식(신검)을 베겠다'며 군사를 청한 견훤을 앞세운다. 왕건은 3개월 후 합류, 견훤과 함께 일선(一善.지금의 선산)의 일리천(一利川)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에 대승을 거둔다. 왕건은 패퇴중인 신검으로부터 '황산 탄현'에서 항복을 받아낸다. 바로 인근 천호산 일대에 군진을 펼치고 신검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창건당시의 개태사는 규모가 엄청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은 종파에 속하지 않은 작은 개인관리 사찰일 뿐이다. 대웅전격인 법당에 용화대보궁이란 편액이 걸린 점도 그렇다. 법당에는 흔히 보는 불상이 아니라 3개의 석불입상(보물 219호)이 봉안되어 있어 이채롭다. 선이 굵고 강한 무인의 기상이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한번에 5백명이 먹을수 있는 밥을 지었다는 철확도 눈에 띈다. 초창기 개태사의 규모를 반영한다. 이동중인 군사들을 위한 야전밥솥이었다는 설명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연무대 인근 금곡4리 경로당쪽으로 난 길을 찾아 들어가면 견훤왕릉이 있다. 항복한 신검의 목숨이 붙어 있는데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한 채 황산불사에서 죽은 견훤이 잠들어 있다. 자신이 나라를 일으킨 완산이 그립다고 해 완산방향으로 묘를 썼다고 한다. 커다란 봉분과 후백제 견훤왕릉이라 쓰인 비석만이 쓸쓸히 서 있다. 탑정지위쪽 충곡리의 계백장군묘역을 둘러본다. 백제군사박물관 건립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지럽다. 시간이 되면 쌍계사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웅전(보물 408호)의 꽃살문이 예쁘다. 색이 바랬지만 예 그대로의 장엄 화려한 기운이 가득한 법당내부도 다른 보통의 여느 사찰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논산=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