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산사로 향한 길은 깊은 어둠에 묻혀 있다. 경망스레 들썩이는 손전등빛 서너개만이 누군가 함께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봄이라기엔 이른 탓인지 바람결이 차다. 딱딱하게 얼어 풀리지 않은 땅의 감촉도 8부 능선에서 시작한 손쉬운 발걸음을 긴장케 한다. 20분 걸음 끝에 마주한 법당의 불빛. 상서로운 기운이 뭉쳐 있는 듯 황금색이 무겁다. 남해의 금산(錦山.6백81m). 그 정상의 보리암에서 기분 좋은 새봄을 기원하는 해맞이. 연신 무릎꿇는 참배객의 정성에 잠시 시간을 잊는다. 법당 왼편으로 내려서 해수관음상과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자리를 잡는다. 해무에 갇혀 희미한 윤곽뿐인 먼 바다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여성스럽다. 섬 바깥쪽으로 둘러쳐진 붉은 띠가 순간 희미해진다. 어느새 솟아 오른 해가 천지를 환히 밝힌다. 잿빛 해수관음상이 황금옷으로 갈아 입고 바다를 향해 도열한 금산의 흰 바위무리도 빛을 받아 살아난다. 그를 향해 두손을 모으는 사람들은 이 3대 관음기도도량의 영험을 소망한다. 발을 돌리니 삼층석탑이 보인다.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탑이다. 전설과는 달리 고려양식이라는데, 나침반을 올려 놓으면 바늘이 방향을 찾지 못하는 자기교란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왼편길로 내려서면 금산 33경의 1경인 쌍홍문을 마주한다. 이곳에서 득도하고 인도로 향하던 석가세존을 보고 막힌 바위가 굴을 내 길을 열어주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석송을 갑옷 처럼 두르고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바위의 콧날이 오똑하다. 다시 반대편 보리암 아래 산죽길을 따르면 조선 태조 이성계 기도처가 있다. 이성계는 백일기도를 하면서 왕위에 오르면 산 전체에 비단을 둘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왕이 된 이성계는 산에 비단옷을 입혀 주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내렸다.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세운 뒤 보광산이라고 불렀던 이 산의 이름이 그때부터 금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남해를 둘러볼 차례. 복곡매표소를 내려서 19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백련포구다. 포구 바로 앞에 모양대로 삿갓섬이라고도 불리는 노도가 보인다. 서포 김만중이 3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구운몽과 서포만필을 지은 곳이다. 계속되는 해안길은 한려해상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상주해수욕장에 봄기운이 몰려들고 미조항은 푸근하다. 곳곳에 일군 다락논은 마늘싹으로 푸릇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물건방조어부림의 정경이 그림같다. 지족해협에서 보는 원시어로장치 죽방렴 또한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1002번 지방도를 따라 가천암수바위를 찾는다. 불근 솟은 숫바위의 모습이 짧은 여행길의 끝을 환히 미소짓게 만든다. 남해=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