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각국의 영화인들은 폐막일이 가까워오자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과 심사위원대상인 은곰상의 주인공을 점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다른 경쟁작들을 압도할 만한 수작이 없어 여러 영화가 황금곰상, 은곰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음악상 등을 고루 나눠갖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미국영화 3편이 비교적 고른 우위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영화제 모토에 맞게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되고 있다. 각국의 역대 국제영화제가 거장에 대해 보여준 경의를 감안한다면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그리스)과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안전한 행동」(프랑스)이 2차대전 당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수상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셈이다. 물론 4편을 출품한 독일이 '홈구장'의 이점을 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상작 발표와 시상은 17일 오후 7시 베를리날레 페스티벌에서 펼쳐질 폐막식에서 진행된다. ▲수상작 경쟁과 필름시장의 각축 못지않게 한국에서 건너온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눈치작전 또한 치열하다. 부산영화제(11월)의 전양준씨, 부천영화제(7월)의 김영덕씨, 전주영화제(4월)의 서동진씨는 "개최시기와 성격이 다른 만큼 같은 작품을 두고 다툼을 벌일 일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나 서로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최시기가 코앞에 닥쳐 있어 마음이 급한 서동진씨는 개막 전에 도착했다가 12일 출국했다. 그는 "국내 영화제간의 조율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외국의 배급사들이조건을 따지며 저울질하려고 들어 힘들다"면서 "이제 윤곽을 모두 확정해 조만간 서울에서 초청작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막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다 위상도 가장 높아 상대적으로 느긋한 부산영화제의 전양준씨는 "내심으로 낙점한 작품은 여럿 있는데 눈이 번쩍 뜨일 작품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반면 김영덕씨는 "고른 수준의 작품이 많아 알찬 성과를 올렸다"고 흡족해했다.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부문에서는 「평양 로보걸(Pyongyang Robogirl)」이란 제목의 4분짜리 단편영화가 상영돼 한국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핀란드의 주니 호카넨과 시모주카 루이포가 제작한 이 영화는 평양의 여성 교통경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어느 한국인 관람자는 "통행량도 별로 없는 도로에서 로봇처럼 절도있는 동작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광경이 그들 눈에 희한하게 비쳤던 모양"이라면서 씁쓸해했다. 한편 유러피언 필름 마켓에는 북한의 조선수출입공사 직원 두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아리랑축전 개막에 앞서 열릴 아리랑영화제의 초청작을 고르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한반도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한국 부스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고 한국 관계자와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베를린=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