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학자들이 주축을 이룬 역사학 학술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는 지난 96년 가을 고려 수도 개경의 역사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개경사연구반'이라는 소그룹을 만들었다. 최근 출간된 단행본 「고려의 황도 개경」(창작과비평사)은 개경사연구반 회원들이 강독과 연구발표회 및 논문발표 등을 통해 이룩한 이 분야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박종진 숙명여대 교수를 비롯한 관련 전공자 10명이 각 주제별로 글을 집필했다. 책은 개경을 크게 두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1부는 고려 수도로서 개경의 구조를 풍수.성곽.궁궐 및 부속관청.태묘와 사직.행정구역 등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개경이 도읍으로 자리잡은 데는 풍수지리설이 많은 역할을 했으며 전반적인 도시계획 체제가 중국을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중국과 대등하다는 의식 아래 중국 제도에 맞춰 묘(廟)를 만들었고 천자를 정점으로 한 신분질서 체제의 구현인 왕기제(王畿)제를 시행했다. 또한 궁문이 20여개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광화문이란 곳도 있었고 개경 일대에 300여곳에 달하는 절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고려시대 개경은 유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중세 도시라는 것이다. 이어 2부에서는 개경을 무대로 한 생활상을 들여다본다는 뜻에서 도로.시장.주거.조세.구휼제도.교육.연등회 및 팔관회를 다루고 있다. 개경 거리에는 시전과 여항소시라고 일컫던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각종 상품을 취급했다. 거래 상품에는최고급 중국 수입 비단도 있었고 아라비아 제품도 섞여 있었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 도표를 동원한 이번 연구성과는 남한 사람들이 쉽게 볼 수없는 개경의 모습을 알기 쉽게 다각도로 조명한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황제국을 지향한 고려의 외양을 재구축하는 데만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아쉬움이 남는다. 고려의 생활상을 보자고 했음에도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그들이 남긴 각종 '위대한 문화유산'들만 넘쳐나기 때문이다. 289쪽.1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