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영국의 대법관을 지낸 토머스 모어(1477-1535)가 쓴 동명 소설(1516년 출간)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스어 접두어 ''ou(없는)'' 혹은 ''eu(좋은)''와 ''topos(장소)''라는 명사가 결합된 이 말에는 그래서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없는'' 장소이면서 ''좋은'' 장소, 즉있기에는 너무나 좋은 장소라는 의미다. 사후 교황으로부터 ''성인'' 칭호를 하사받을 만큼 독실한 성직자였던 모어는 이 책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고 정의롭게 배분되는 행복의 가능성을 추구했다. 불평등과 반복을 조장하기 쉬운 물질적 풍요는 그의 눈에 공허하고 유해한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모어보다 한 세기 후 인물로 역시 대법관을 지낸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꿈꾼 유토피아는 물질적 풍요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냉동실험을 위해 눈을 채집하러 나갔다 독감에 걸려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인 채로 출간된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1627년)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및 진보에 기반한 낙관적인 미래가 펼쳐져 있다. 이 책이 최근 김종갑 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에코리브르에서 출간됐다. 항해 도중 역풍을 만나 조난한 주인공 일행이 도착한 곳은 벤살렘 왕국. 솔로몬학술원 회원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이 왕국의 모습은 베이컨의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과 지식과 과학문명에 대한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씨앗 없이 배양토의 혼합만으로 식물을 성장시키고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내며, 항공기, 잠수함, 생명을 연장시키는 물을 개발해낸 벤살렘 왕국. 자연현상까지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이 왕국에 ''결핍''이란 없다. 누군가 2인분을 먹으면 누군가는 굶어야 하고,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누군가는두 배의 일을 해야 하는 모어의 유토피아와는 너무나 판이하다. 하지만 지식의 힘을맹신한 베이컨에게 벤살렘 왕국은 과학 발달의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생태계 파괴와 인간소외 등 과학이 낳은 후유증에 대한 비판과 자기반성이 활발한 이 시대에 이 책은 베이컨의 의도와는 반대로 과학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우리를 질타하는 것으로 읽힌다. 원제 ''The New Atlantis''. 136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