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복잡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삶이 고단해지면 더욱 그렇다. 이 때 사람들은 지친 몸을 편안하게 맡길 수 있는 보금자리를 동경한다. 어차피 전쟁터 같은 생활터전을 아주 떠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유일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생각에 그칠뿐 현실로 이루기는 쉽지않다. 평심정(平心亭). 보통사람들이 동경하는 집을 가장 잘 표현한 좋은 본보기다. 이름만큼이나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화려하고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수줍은 듯 단정한 모습으로 "절제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3년전 경기도 남양주군의 덕소읍 도곡리에 지어진 집이다. 한강변에 즐비한 아파트단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시골동네에 나지막한 단층으로 지어졌다. 도심생활에서 늘 마음의 쉼터를 찾던 40대후반의 젊은 부부가 오랜 고민끝에 교외지역에 마련한 집이다. 도심까지의 거리도 그리멀지않아 생활에 큰 불편은 없다. 이웃 집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일부러 낮게 설계됐다. 집터가 야트막한 언덕이어서 더 나은 경관을 위해 2층 정도로 짓고 싶은 욕심도 났을 법하다. 하지만 건축주는 이를 자제했다. 이웃과의 자연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평심정은 본채 사랑채 마당 노출콘크리트 담장 등으로 이뤄졌다. 설계자는 전통가옥의 개념을 도입,집을 본채와 사랑채로 나누고 그 사이에 마당을 넣어 여유롭게 꾸몄다. 통로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담장위로 눈길을 한번 주면 운길산 자락이 시원스레 다가온다. 왼쪽으로 돌면 본채가 드러난다.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자연풍경이 모습을 달리하며 새롭게 나타난다. 담장엔 폭이 제각각인 사각형 모양의 틈새가 군데군데 만들어져 있다. 이들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담는 병풍과 액자가 된다. 본채와 사랑채의 중간엔 마당이 캔버스처럼 놓여있다. 행여 녹을세라 내린 눈을 그대로 안고 있는 마당은 사철의 변화를 놓치지않고 잡아내는 그림판이다. 마당을 끼고 교묘하게 배치된 각 방으로는 멋진 외부풍경이 들어온다. 직접적 조망보다 뭔가를 통해 걸러서 비쳐지게 만든 정교한 시스템이 돋보인다. 입구 통로는 일부러 길게 만들었다. 거주자들이 산책하는 묘미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진입통로를 지나면 마당으로 통하는 입구가 나온다. 이어서 사랑채와 마당 사이에 배치된 삼각형의 마루가 있다. 삼각형의 철골을 예리하게 돌출시킨 마루지붕이 눈길을 끈다. 강한 역동성을 표현해서 차분한 집안 분위기에 변화를 주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남동쪽 모퉁이엔 깨끗한 물이 고인 사각형의 연못이 놓여있다. 청명한 날엔 수면에서 반사된 빛들이 벽화를 그려댄다. 본채에서 마당을 향해 열린 거실 유리창은 외부의 빛을 끌어들여 집안을 화사하게 만든다. 내외부를 관통한 창위의 수평판은 밖에서는 차양의 역할을 한다. 이것이 여름엔 툇마루에서 햇볕이 끊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한겨울엔 마루 깊숙이 빛이 들어온다. 어릴적 고향집의 향수가 절로 배어나는 설계다. 주방가구 벽난로 등의 소품은 유난히 수직성이 강조됐다. 수평성이 강한 외형의 단조로움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평심정은 평범한 외형의 시골집이다. 하지만 어느 고급주택보다도 주변환경과의 조화에 충실하다. 설계자인 우경국 예공건축사사무소 소장은 평심정의 설계컨셉트를 국내 최고의 정원인 담양 소쇄원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그래선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자연을 의식한 느낌이 든다. 집에 흘러드는 빛과 풍경,거실과 안방의 배치,안마당과 마루 등의 연계가 짜맞춘 듯 정교하다. 재료는 콘크리트와 철골이지만 목조로 이뤄진 전통주택과 멋진 정원에서 흐르는 따뜻함이 금새 느껴진다. 주위를 압도하는 도도함도 없다. 연면적 50여평에 평당 건축비는 3백50만원정도 들었다. [ 건축메모 ] 규모:대지면적-97.3평,건축면적-48.63평,연면적-48.63평.지상1층. 위치: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구조-경량철골조,건축비용-평당 3백50만원 설계:예공종합건축사사무소 (02)730-8834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