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인 창녀 만들기"란 카피는 섬뜩하다. "육체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란 통념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말이다. 몸과 마음은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으며,섹스와 사랑은 함수관계를 잃은지 오래임을 함의하는 문구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이 카피를 내세워 시선을 모았던 영화 "나쁜 남자"(김기덕 감독)는 사창가두목이 첫눈에 반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어 삶의 반려자가 되게 하는 내용의 드라마다. 영화의 주요소인 "훔쳐보기를 통한 관음증"을 적절하게 도입함으로써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 대중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깡패두목 한기(조재현)는 미모의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한눈에 빠진다. 대낮의 거리에서 그는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하지만 그녀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는다. 그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음모를 꾸며 그녀를 사창가로 끌어 들인다. 유혹과정에서 선화가 끌렸던 한 소품은 에곤 쉴러의 그림이다. 남녀의 정사장면이 황홀감을 배제한 채 저속하며 불경스럽게 묘사돼 있다. 요절한 천재화가 쉴러에게 섹스는 성병에 대한 공포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이중성으로 잠복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성병으로 죽은 탓이다. 쉴러의 그림은 선화가 창녀로 겪게되는 성체험을 대변한다. 선화는 곤두박질한 운명을 저주하고 한기를 증오하지만 결국 그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한기에게서 강인함과 인내심을 발견했고 동시에 연민을 느꼈다. 깡패들과의 여러 차례 싸움에서 한기는 벽돌로,유리로,칼로 찔리거나 맞지만 상대를 제압한다. 한기가 선화를 지배하는 방식은 "훔쳐보기"행위다. 그는 유리거울 뒤편에서 그녀의 생활을 훔쳐보면서 그녀 깊숙히 파고 든다. 훔쳐보기는 타인의 시선을 차단한 채 자신의 전존재를 투입함으로써,대상을 이미지속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을 화면속 인물과 쉽게 동화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도망치다 잡힌 선화는 바닷가에서 물속으로 걸어가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다. 이 장면은 대학생이던 과거의 선화는 숨졌고,창녀 선화만 존재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가혹한 운명에 순응함을 뜻한다. 한기는 "나쁜 남자"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을 바꾸지 않고 그녀를 자신의 비루한 처지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장면에서 한적한 어촌의 트럭에서 아내 선화를 다른 남자에게 임대해 주는 포주로서의 삶을 꾸려간다. 한기와 선화 사이에 사랑의 황홀과 열락감은 없다. 그저 한계상황에서 서로를 이해해줄 "운명공동체"의식이 존재할 뿐.김기덕 감독은 "사랑이 아닌 운명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김기덕 특유의 폭력미학은 여전하다. 전단지를 빳빳하고 뾰족하게 접어 상대의 목을 찌르고,커다란 유리조각을 허리춤에 품고 걸어 오다가 배를 쑤시는 장면 등은 소름을 돋게 한다. 한기역 조재현은 극중에서 "깡패새끼가 무슨 사랑이야"란 한 마디의 대사만 했지만 사내의 탐욕과 야심,분노와 고뇌뇌 등을 표정연기로 모두 표현해 냈다. 선화는 김 감독 전작속의 여성들과 "한묶음"이다. 남성의 강간대상이고,운명에 항거하기보다는 굴종하는 인간형이다. 이 영화는 제도권 인물을 비제도권 영토로 납치한다는 점에서 김감독의 작품 계보를 잇는다. 지난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의 7번째인 "나쁜 남자"는 오는2월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초청받았다. 세계영화계에 또 한차례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