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천문학자, 물리학자로서 케임브리지 천문대 소장을 역임한 아서 스탠리 에딩턴(1882-1944)은 1919년 개기일식 관찰을 통해 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 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뉴턴의 중력이론을 부정하는 한편 거의 아무도 믿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오스트리아 빈대학 신입생이던 칼 포퍼(1902-1994). 참이라던 뉴턴 물리학이 깨지는 순간 그는 마르크스 역사이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또한 거짓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상은 과학철학의 대가로 성장하게 되는 포퍼가 최근 완역된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민음사)에서 고백하고 있는 일화다. 젊은 포퍼에게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는 계급관계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개념들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했으나,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모으기에만 급급할 뿐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에 빠져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추측과 논박」 전편을 관통하는 포퍼 철학이 태동한다. 성균관대 철학과 이한구 교수가 옮긴 이 저서는 요점을 추리자면 우리의 지식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발전을 위한 전단계로 포퍼는 기대, 추정, 잠정적 해결책 등을 설정한다. 추측이라는 범주로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다. 추측은 비판과 논박을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실수를 걸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퍼에게 논박은 진리에 더욱 가까이 가는 전진의 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당시 서구 지성계를 지배하던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영항 아래 성립된 빈학파에 대한 공박이자 반발이었다. 빈학파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경험적 방식으로는 검증할 수 없음을 들어 무의미한 것으로 배제해 버리고 오직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실증주의, 혹은 검증주의는 전체주의나 권위주의를 낳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검증 가능하다는 확신은 나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광신과 광기, 독선을 부른다. 이런 오만이 휴머니즘과 결부될 때 전체주의가 싹트고 철학적 결벽증과 결합하면 편협한 논리실증주의로 발전한다. 이처럼 포퍼가 논리실증주의를 단순한 철학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시킨 대목은 탁월하다. 대신 포퍼는 비판은 과학의 생명 그 자체임을 역설하면서 '반증주의'를 내세운다. '비판에 마음을 열어두고 그것을 기쁘게 수용하는 일'이야말로 과학적 지식이 성장하는 원동력이고 조금씩 나은 사회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열린 사회'이며 이를 막는 존재가 '그 적들'인 것이다. 전 2권 900여쪽. 상권 2만원, 하권 1만6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