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민영(67), 박제천(56)씨가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민씨의「해지기 전의 사랑」(시와시학사)과 박씨의「SF-교감」(문학아카데미). 두 시인 모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지 40여년이 된 연륜을 지닌 만큼 새작품집들은 자연과 삶을 관조하는 성숙한 시선과 통찰로 가득하다. "詩 쓰는 일은 날이 갈수록 힘에 겨웁고/어느덧 望七十의 고개에 다다랐다"( 일부). 1959년 등단한 민영 시인은 시집 「단장」(1972), 「냉이를 캐며」(1983), 「엉겅퀴 꽃」(1987), 「유사(流沙)를 바라보며」(1996) 등을 내며 묵묵히 시단을지켜왔다. "수많은 시인들이 천마의 기세로 달려갈 때 홀로 바닥을 기는 별주부의 걸음으로 걸어간다"는 그는 정처없지만 시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시의 아침'을 향해 걷는다. 그러나 갈등과 혁명의 시대를 헤쳐오며 시만 껴안고 살 수는 없었다. "요행히도나는 그것을 헤치고/늙은 표범처럼 살아남았다"( 일부)고 자평하면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시 는 스스로 `무사 안일하게 살아온 자본주의의 패졸'이라고 자책하고 남미의 전사 체 게바라의 죽음을 떠올린다. 몸에 밴 겸손의 자세지만 현실 비판의 날을 세울 때는 추상같다. 가진 자 앞에서 오금을 못 펴고 백성 앞에서는 폼을 재는 자들은 이제 양로원에나 갔으면 좋겠다고 일갈하고 "야 이 넋빠진 자식들아!/정치가 망치 된 지 이미 오래다"( 일부)라고 외친다. 1966년 등단한 박제천 시인은「나무 사리」(1995)이후 6년만에 생애 열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보들레르 이래로 시의 화두인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다. "고로쇠 나무에 등을 기댔더니, 어느 순간 서늘한 손길/아, 요녀석이 내게 지금 氣를 보내오는구나"( 일부). 고로쇠 나무와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가 하면 자신이 아예 나무가 돼 그리운 이의 등이 되고자 한다. 또 표제시에서 잘 묘사됐듯 금강초롱 꽃잎에서 우주의 파동을 느끼고 어머니의 해소 기침까지 전달받았을 자신의 배꼽에서 우주의 교감을 발견한다. 막 베어진 굴참나무 나이테에서 `으앙'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어느새 풀밭의 곤충들이 악기가 돼 우주의 화음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사람도 또한 태초에는 그 바다에서/ 물고기나 다름없이 살았다는 설을 나는 믿고 있다"일부)는 경지에 이른다. 그에게 시는 애인이자 섞임의 대상이다. 백석은 갈매기, 기림은 나비, 미당은달과 눈맞추거나 한 몸이 되지 않았던가. "시경 이래 시인이란 자들은...바닷속의 물고기까지 이름을 지어주고...한 몸 한 마음이 되지 않았던가"( 일부>).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