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전공자로서 사법·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검사 생활을 청산하고 새문명아카데미 원장까지 역임한 이색 경력의 변호사가 또 책을 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왕성한 그의 탐구욕은 언제쯤이나 누그러질 것인가. 지금까지 발간된 그의 노작들은 교육개혁,자본주의와 사회주의,문명사,대공황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제들을 두루 섭렵했었다. 새 책 '인류의 정신사'(송희식 지음,삼성경제연구소,전2권,각권1만원)도 일견 그 동안의 지적 여정과는 괴리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몇 쪽만 읽어 내려가면 저자의 관심이 '새로운 문명과 인류의 미래 정신세계'를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인류는 수천년에 걸쳐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축적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선각자들의 통찰과 예지에 힘입은 덕분이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고뇌하고,사유하고,사물을 바라보고,개념을 정의하는 범위와 틀은 그들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동·서양을 망라하여 기원전 8세기의 관중(管仲)으로부터 20세기 후반의 경제학자까지 50여명에 이르는 정신적 스승들의 세계관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비교한 것은 알찬 수확이다. 특히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딱딱한 주제를 알기 쉽게 조명한 것이 장점이다. 독특한 시각으로 정신적 거장들의 가치관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관중을 공자(孔子)의 반열에 올려 관자(管子)라고 부르면서 그의 성공 원인을 '원숙한 커뮤니케이션',실패 원인을 '시스템의 홀대'로 분석한 점이 좋은 예다. 선현들의 위대한 유산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새로운 정신세계의 개척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아프간 전쟁은 역사의 반복에 불과한가,과거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갈등인가. 미국으로의 일극화(一極化)는 문명간의 대회전을 초래할 것인가. 중국이 9·11 테러를 당했다면 미국처럼 강력한 응징에 나설 것인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물과 기름처럼 대립과 반목을 거듭할 것인가.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모색하기를 권유한다. 공자만큼이나 다재다능한 저자가 제(齊)나라의 포숙아(鮑叔牙)와 환공(桓公)을 만나 뜻을 펼치게 될 날을 고대한다. 박재완 성균관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