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에서 「대서양 문명사」와 「지중해 문명사」에 이어 문명탐험 시리즈 3권으로 펴낸 「온천의 문화사」는 온천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들여다본 서구 문화의 변천과정을 고찰한 책이다. 저자 설혜심씨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런던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연세대 등에서 서양사를 강의하고 있다. '건전한 스포츠로부터 퇴폐적인 향락에 이르기까지'라는 부제로 미뤄봐도 이 책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은 '온천의 문화사'라고 붙였지만 사실은 영국의 온천 발달사가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영국 역사에서 온천이 탄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 발달과정을 통해 레저라는 주제를 조망하고 있다. 영국에서 온천이 탄생하게 된 이면에는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가로놓여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헨리 8세가 1536년과 1538년 두 차례에 걸쳐 순례와 성물 숭배, 그리고 성상에 대한 보시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함으로써 성지순례가 금지되자 이전의 성천이 위치했던 순례지에 온천장이 세워지게 됐다. 또 온천수가 '성수(聖水)'의 중세적 신성성에서 벗어나 '광천수'로 인식하게 된 과학과 경험주의의 발전 역시 온천의 발달에 기여했다. 이같은 변화는 물이 성스러운 것이라는 중세시대의 관념에 수정을 가져왔으며 온천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질병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실용적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아울러 이윤추구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변화도 자리하기 시작해 이제 온천장은 다각적인 상업활동이 가능한 중심지가 되었다. 의료인이나 온천장 주민들은 온천수의 판매와 숙박은 물론, 건전한 스포츠로부터 퇴폐적인 향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저를 상업화하게 됐으며 온천은 휴양지이자 사교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던 것이다. 저자는 온천장이 발달했던 지역의 시정문서, 수도원 기록, 토지대장, 병원기록, 지역선전 팸플릿 등의 사료를 총동원해 16-17세기 영국 온천의 탄생과 그 발달과정이 종교개혁이라는 자극제를 통해 사람들이 레저를 적극적으로 상업화시켜간 과정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 온천 대국의 명성을 떨치는 일본이나 '터키탕' 용어를 탄생시킨 서아시아 이슬람 문화권의 온천 문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어 포괄적 의미의 책 제목이 다소 무색하다는 느낌이다. 344쪽. 2만원.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