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postmodern)'이란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현대'를 뜻하는 단어 'modern'에 '후의, 다음의, 뒤의'라는 의미의 접두어 'post'를 붙인 '포스트모던' 용어는 1980-90년대 한때 유행의 첨단을 걷는 식자들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 말을 거쳐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 용어의 관심과 인기는 시들해졌다. 오늘날 '포스트모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문제를 다시 제기하려는 경향은 눈에 띄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은 끝난 것일까, 아니면 구시대의 낡은 유행어가 돼버리고만 것일까? 독일 예나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볼프강 벨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벨쉬가 저서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1,2」(책세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포스트모던이 결코 낡거나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무가치한 용어 논쟁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계승, 발전해나가야 할 개념이라는 것이다. 벨쉬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와 그 내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비록 '포스트모던' 용어 자체는 폐기될 수 있을지언정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로 대표되는 그 내용은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주(敎主)'격인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에 따르면 "포스트모던의 소극적 최소 개념은 통일성을 향한 소망과의 결별이며, 적극적 개념은 다양한 언어 게임들의 상호 이질성 및 자율성과 환원 불가능성을 최대한 인정하고 강화하는것"이다. J.조이스, T.S.엘리엇, M.프루스트 등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들은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의식의 표현과 난해한 신화적 상징의 사용을 통해 예술에서의 엘리트주의, 획일화를 심화시켰다. 모더니즘의 지나친 엘리트주의에 반발해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은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하면서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시대적 정치이론을 낳았으며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발전하기도 했다. 벨쉬는 그러나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관계를 대립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포스트모던은 모던을 긍정적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며, 포스트모던의 구상은 오늘날 모던이 보여주는 포스트모던적 특징, 즉 다원화 경향을 긍정적인 것으로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구상이다. 1980년대 중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창이던 독일의 학계에서 위르겐 하버마스, 하인리히 클로츠, 알브레히트 벨머, 로베르트 슈페만 등과 함께 이 논쟁을 이끌었던 벨쉬는 당시 포스터모던의 입장을 가장 철저하게 옹호하고 또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전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았다. 당시 벨쉬가 출간했던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1987)은 개념적 혼란을 정리한 명쾌한 이론서로 인정받았고 '포스트모던에 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거듭되는 정당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또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연도 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낡은' 느낌이 드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연세대 독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독문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민수가 옮겼다. 1권 420쪽, 2권 412쪽. 각권 1만7천원.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