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여성학자로, 또 서울대 출신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55)씨가 '나이듦'과 '몸'을 화두로 한 에세이를 냈다.「나이듦에 대하여」(웅진닷컴刊). 「삶의 여성학」「남성을 위한 여성학」「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등 삶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과 '육아'에 관한 글을 써왔던 저자가 관심의 초점을 '나이듦'과 '몸'으로 옮긴 데는 역시 개인적 체험이 큰 계기가 됐다. 어느새 나이 쉰을 훌쩍 넘긴 데다 평생 아픈 줄 몰랐던 몸에 고장이 났던 것. 2년 전 응급실로 실려간 박씨는 심한 빈혈로 일주일 동안의 수혈이 끝난 뒤에야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수술이 끝난 뒤엔 자궁과 난소가 사라져 있었다. 이 책은 1998년부터 여성신문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하던 에세이를 모아 손질을 하고 몇 편의 글을 덧붙여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병 때문에 연재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병치레는 오히려 "생애 처음으로 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이듦'을 더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늙음이란 젊음이 스타카토로 끝나는 어느 날 별개의 삶처럼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늙음을 밀어내려고 애쓴다" 이 책은 이같은 노화에 대한 막연한 거부 대신 늙는다는 것, 그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변하고 몸이 변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를 말한다. 저자는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유난히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것을 깨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나이 들어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이 정한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나잇값을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또 다양한 성 역할이 성 차별을 줄이듯 다양한 연령 역할이 연령 차별을 줄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유난히 왕성한 혈기로 '너무 힘이 넘쳐 비인간적으로 보였'다는 박씨는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진다는 게 반드시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운을뗀 뒤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가 치열하게 사는 대신 멀찌감치 물러나서 조용히 구경만 해도 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다. 또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성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좋다"며 나이듦을 찬미하고 있다. 254쪽. 7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