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젝시옹(abjection)이란 단어는 프랑스어로 비열, 타락, 비참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기호학자 겸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그의 저서「공포의 권력」(동문선)에서 아브젝시옹의 의미를 더욱 확대했다. 크리스테바는 인류역사에서 항상 덮어두고 억눌러왔던 것, 즉 죄, 오물, 혐오, 도덕적 타락, 정신적 피폐, 질병에 걸린 육체, 근친상간 등을 모두 아브젝시옹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아브젝시옹의 의미를 모색하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셀린(1894-1961)의 텍스트를 주 모델로 삼는다. 셀린은 출세작인 「밤의 종말에의 여행」에서부터 「분할불 방식의 죽음」「기뇨르즈 밴드」「전쟁」「성에서 성으로」「북부」 등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줄곧 아브젝시옹의 문제에 천착했다. 크리스테바는 셀린이 개인적으로는 질병과 육체의 붕괴, 윤리ㆍ도덕의 피폐, 가족과 집단공동체의 붕괴, 인간성의 말살을 가져왔던 제1, 2차 세계대전 등의 주제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해왔음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셀린의 작품을 통해 비참과 욕지기 나는 더러움이 불러일으키는 통쾌함과 정화 작용에 주목한다. 크리스테바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의식(儀式)들 속에서 행해지는 정화행위의 본질은 바로 아브젝시옹을 통한 것이었으며 모든 종교가 억압하려는 아브젝시옹이야말로 종교의 다른 한 면이자 종교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비참을 통한 정화'라는 개념은 도스토예프스키나 로트레아몽, 프루스트, 아르토 등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며 베토벤의 음악과 루오의 판화에도 나타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詩學)」에서 카타르시스를 설명하면서 도입한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기독교의 유일 신앙에 다름아닌 성스러운 공포의 담지자인 종교적 완성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산출되는 권력(종교적ㆍ도덕적ㆍ언어적)의 베일을 벗기는 작업을 통해 아브젝시옹은 고갈되고 붕괴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