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이라는 전통 재료를 이용해 두터운 질감(마티에르)이 돋보이는 화면을 보여 온 이정연씨(49·삼성아트디자인인스티튜트 교수)의 개인전이 28일부터 12월12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린다. '신창세기'시리즈 30여점을 선보인다.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씨는 뉴욕 프랫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꿔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했다. 그는 동양적인 재료로 동양의 정서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다. 인조 물감을 배제하고 천연재료에서 추출한 색채만 사용한다. 올이 성근 삼베 캔버스에 옻칠을 한 후 뼈 목관악기 대나무 등의 이미지들을 그려 넣는다. 또는 울퉁불퉁한 한지판 위에 삼베를 덮은 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이미지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씨는 이런 재료를 붓이 아닌 손으로 직접 바른다. 손을 사용하다보니 그 이미지는 투박하고 거칠다. 옻칠이 입혀진 삼베에 투박하고 둔탁하지만 암갈색으로 절제된 조형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천연재료들은 유채색을 기반으로 하는 색채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며 "오히려 꾸밈 없는 순수하면서 자연적인 이미지가 돋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화면에 주조를 이루는 나팔 모양의 대나무 이미지는 '두루 통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와 타인,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만남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의 수단인 것인다. 옻칠을 재료로 한 그의 작업은 자연물질로서의 채색재료를 이용함으로써 자연에 동화하는 동양적인 정서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대조형작가상(98년)과 한국미술작가상(2000년)을 수상했다. (02)733-5877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